경주 집경전지 경주 집경전지 집경전은 조선 태조의 어진을 모셨던 건물로 창건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조선왕조실록 등 문헌기록에 의하면 태종 때에 태조의 어진을 봉안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어진은 강원부로 옮겨져 현재는 그 자리만 남아있다. 석구조물은 집경전지와 관련..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1.12
경주 집경전구기비 경주 집경전구기비 조선초기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건물터이다. 지금은 1798년(정조 22)에 세운 ‘集慶殿舊基’ 라는 어필이 적힌 비석만 남아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集慶殿舊基’라는 정조의 어필이 남아있고 뒷면에는 ‘崇禎紀元後三戊午四月 日立’ 즉 정조2..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1.11
경주의 석탑 -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경주의 석탑 -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석가모니는 쿠시나가라의 열반당에서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서쪽을 바라보면서 열반에 든다. 석가모니의 수행비서였던 아난다는 석가모니의 장례절차에 대하여 문의하였다. 석가모니는 "모든 장례절차는 재가신도들이 알아서 할 것이다. 출가 수행..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1.10
경주의 석탑 - 경주 분황사 석탑 경주의 석탑 - 경주 분황사 석탑 화강석으로 쌓은 한변 약13m, 높이 약 1.06m의 기단 위에 안산암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은 높이 9.3m의 모전석탑이다. 현재는 3층이지만 7층 또는 9층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탑은 신라 선덕여왕 3년(634)에 분황사가 창건될 당시에 함꼐 건립된 것으로 추..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1.09
경주의 석탑 - 경주 천군동 삼층석탑 경주의 석탑 - 경주 천군동 삼층석탑 이곳 천군동(千軍洞)이나 보문호 서북쪽의 북군동(北軍洞) 등은 모두 군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지명이다. 따라서 이곳이 서라벌의 동쪽을 지키는 명활산성과 뭔가 관련이 있을 법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를 뒷받침할 자료는 현재까지는 없는 실정이..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0.23
경주 명활성 경주 명활성 경주분지의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 명활산(明活山)은 해발 245m의 낮은 산이나 신라가 건국되기 이전에부터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명활산은 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의 촌장이며 배씨(裵氏)의 시조인 지타공(祗陀公)이 하늘에서 내려온 곳이다. ○五曰, ..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0.22
경주 낭산 출토 석조약사여래좌상 경주 낭산 출토 석조약사여래좌상 신라 8세기말~9세기 이 불상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에서 존명이 약사불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약사불은 중생의 몸의 질병과 無知의 병을 고쳐준다고 하여 大醫王佛이라고도 불렀다. 뿐만아니라 크고 작은 재앙을 물리쳐준다고도 믿어져 신라 ..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10.20
경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경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金銅製半跏思惟像 신라(추정)6세기 말~7세기초 원형의 의자 위에 앉아 사유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도안화된 현태의 삼산관을 썼고, 뒤통수에는 광배를 꽂았던 촉이 돌출되었다. 오른쪽 뺨에 살짝 댄 오른손가락과 오른쪽 발목에 얹은 왼손가락..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08.22
경주 입실리 절터 석탑재 사면불 경주 입실리 절터 석탑재 사면불 四面佛 9세기 입실리 절터의 5층 쌍팁의 1층 몸돌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온전한 모습의 탑신석이 동탑, 한쪽면이 결실된 탑신석은 서탑의 일부였다. 두 탑신석 네 면에 부조된 불상의 조각수법과 자세는 약간씩 다르나, 각각에서 동쪽면으로 비정되는 약..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08.22
경주 전민애왕릉 출토 십이지신상 경주 전민애왕릉 출토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십이지신상 <2015. 7. 31> ◈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2015.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