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연지당 강릉 선교장 연지당 연지당의 마당은 받재마당이라 하여 안채로 들이는 곡식이나 금전을 받을 때 사용하였고, 방은 집안 살림을 돕던 여인들의 거처로 쓰였다. ▲연지당 ▲연지당 대문 ▲연지당 대문 ▲연지당 <2014. 9. 9>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6
강릉 선교장 서별당 강릉 선교장 서별당 서별당은 이씨가의 서고 겸 공부방으로 사용되었고 살림을 맏며느리에게 물려준 할머니의 거처로도 사용되었다. ▲서별당 ▲서별당 ▲서별당 ▲서별당 ▲서별당 <2014. 9. 9>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6
강릉 선교장 안채 강릉 선교장 안채 강릉 선교장의 안채는 넓은 대청을 중심에 두고 안방과 건넌방을 배열하였다. 당당한 규모의 건물로 높은 기단 위에 자리잡고 있다. ▲안채 ▲안채 ▲안채 ▲안채 ▲안대문 ▲안대문 ▲안대문 <2014. 9. 9>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5
강릉 선교장 행랑채 강릉 선교장 행랑채 행랑채는 선교장을 찾는 손님과 주인의 심부름을 하는 집사들의 거처로 사용되었으며, 안채로 가는 안대문, 사랑채로 가는 큰대문이 따로 있어서 남녀유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행랑채 ▲행랑채 ▲행랑채 ▲행랑채 ▲행랑채 ▲행랑채 ▲행랑채 ▲행랑..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5
강릉 선교장 활래정 강릉 선교장 활래정 아름다운 정자로 소문난 강릉의 활래정(活來亭)은 조선 후기의 명문가 고택인 ‘선교장(船橋莊)’에 있는 정자다. 열화당을 세운 다음 해인 순조16년(1816)에 이후(李?: 1773~1832)가 건립하였는데 현재 건물은 이후의 증손 이근우(李根宇,鏡農)가 고종43년(1906)에 중건하였..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5
강릉 경포대 강릉 경포대 관동팔경의 하나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시대 누각으로 경포호수 북쪽 언덕에 세워져 있다. 관동팔경 중 으뜸으로 손꼽힌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에 방해정 뒷산 인월사 터에 처음 지었던 것을 조선 중종 3년(150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다시 지었다. ..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4
강릉 칠사당 강릉 칠사당 조선시대에 호적,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의 7가지 공무를 보았던 조선시대의 관청 건물이다. 처음 세운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은 뒤, 영조 2년(1726)에 크게 확장하였다. 고종 3년(1866)에는 진위대의 청사로 쓰였으나, 불에 타 없어지고..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4
강릉 객사문 강릉 객사문 강릉 객사는 936년(고려 태조 19) 본부객사로 지정되어 임영관(臨瀛館)의 창건을 비롯해 전대청(殿大廳)·중대청(中大廳)·동대청(東大廳)·낭대청(廊大廳)·서헌(西軒)·월랑(月廊)·삼문(三門) 등 모두 83칸 정도의 건물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1366년(공민왕 15) '임영..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4
강릉김씨의 시조 - 강릉 명주군 왕릉 강릉김씨의 시조 - 강릉 명주군 왕릉 신라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묘는 잃어버렸다가, 지금의 묘는 조선 명종 때 강릉부사와 관찰사 등을 지낸 후손 김청경이 찾아내 복원한 것이다. 그가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에 왕릉이라고 ..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3
조선 개국을 예언한 명당 - 삼척 영경묘 조선 개국을 예언한 명당 - 삼척 영경묘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조모이며, 이양무의 부인이고, 목조의 어마니가 되는 이씨의 묘이다. 이씨 부인은 이양무와 함께 전라도 전주에서 이곳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별세하여 아들인 목조가 이곳에 어머니를 안장한 후 다시 함경조로 이주하였다. .. ◈한국문화순례◈/영동태백문화권 201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