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김씨의 시조 - 강릉 명주군 왕릉
신라하대의 진골 귀족으로 강릉 김씨의 시조인 김주원의 묘소이다.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묘는 잃어버렸다가, 지금의 묘는 조선 명종 때 강릉부사와 관찰사 등을 지낸 후손 김청경이 찾아내 복원한 것이다. 그가 명주군왕으로 봉해졌기에 왕릉이라고 부른다. 태종무열왕의 둘째아들인 김인문의 5세손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무열왕의 셋째아들인 문왕의 5세손이라고 하며, 37대 선덕왕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할 사람이 없자 왕가의 혈족인 그가 왕으로 추대되었다. 그러나 그가 경주로 가는 중에 큰 비가 내려 강을 건널 수 없어 회의에 참석치 못하게 되었다. 이에 신하들은 하늘이 그를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하여 김경신(후의 원성왕)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김주원과 왕위를 다투던 라이벌 김경신(훗날 원성왕)은 어느 날 꿈을 꾼다. 머리에 쓴 두건을 벗고, 흰 갓을 쓰고 가야금을 손에 들고 천관사 우물에 들어가는 꿈이였다. 이상하게 여겨 점을 쳤더니 관직에서 쫓겨나 감옥에 가는 꿈이라고 해몽하였다. 수심에 찬 김경신에게 아찬 벼슬을 하던 여삼이 찾아왔다. 간밤 꿈을 얘기하자, 대번에 왕이 될 꿈이라며, 김주원을 물리치기 위해 알천(경주에 있는 강)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알천에 제사를 지낸 덕분인지, 큰 비가 쏟아져 김주원은 알천을 건너지 못해 궁으로 들어가지 못했고 신하들은 하늘의 뜻이라며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하였다.
이찬(伊 ) 김주원(金周元)이 처음에 수석 재상으로 있을 때에 왕은 각간의 지위로 그의 차석의 자리에 있었다. 왕은 꿈에 머리에 썼던 두건을 벗고 흰 갓을 쓰고 손에 12현금(絃琴)을 잡고 천관사(天官寺)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꿈을 깨어 사람을 시켜서 점을 쳤더니 점쟁이가 말하기를, "두건을 벗는 것은 관직에서 쫓겨날 조짐이요, 12현금을 잡은 것은 칼을 쓸 조짐이요, 우물에 들어간 것은 옥에 들어갈 조짐이외다." 하였다.
왕은 이 말을 듣고 매우 걱정하여 문을 잠그고 출입을 하지 않았다. 이때에 아찬 여삼(餘三)이 와서 배알하겠다고 연락하였으나 왕은 병으로 나가지 못하겠다고 사양하였다. 두 번째 연락하여 말하기를, "꼭 한 번만 뵙기를 바라나이다"고 하여 왕이 이를 승낙하였다. 아찬이 말하기를, "공께서 지금 기(忌)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왕이 꿈을 점친 사연을 죄다 이야기하였더니 아찬이 절을 하고 말하기를, "이 꿈은 아주 길한 꿈이외다. 공께서 왕위에 올라가도 저를 버리시지 않으신다면 공을 위하여 해몽을 하겠습니다" 하였다. 왕이 곧 좌우를 물리치고서 해몽을 청하니 그가 말하기를, "두건을 벗는 것은 자기 윗자리에 사람이 없다는 뜻이요, 흰 갓을 썼다는 것은 면류관을 쓸 조짐이요, 12현금을 들었다는 것은 12대 손자에게 왕위를 전한다는 조짐이요, 천관사 우물에 들어간다는 것은 대궐에 들어갈 조짐이외다"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내 윗자리에 주원이 있는데 어떻게 윗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니 아찬이 말하기를, "청컨대 비밀히 북천(北川) 신에게 제사를 지내면 될 것입니다"라고 하여 왕은 이대로 하였다.
얼마 안 가서 선덕왕이 죽자 나라 사람들이 주원을 받들어 왕으로 삼으려고 그를 대궐로 맞아들이려 하였던 바 그의 집이 개천 북쪽에 있었는데 졸지에 냇물이 불어 건널 수가 없었다. 왕이 먼저 대궐로 들어가 즉위하니 주원의 도당들도 모두 와서 여기에 붙어 새로 등극한 임금에게 배하(拜賀)하였다. 이가 원성대왕이 되었으니 이름은 경신(敬信)이다. 대체로 좋은 꿈을 꾼 것이 들어맞은 셈이다.
<삼국유사 원성대왕(元聖大王)조>
김주원은 이듬해 선대로부터 인연이 있는 명주(지금의 강릉)로 와서 중앙과 대립하는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 ’으로 봉해졌으며, 강릉 김씨의 시조가 되었다. 원성왕은 그에게 통천에서 평해까지의 동해안 일대를 식읍(食邑:공신에게 주는 땅)으로 주었다. 현재 묘역에는 봉분 아랫부분에 긴 사각형의 둘레돌을 두른 묘 2기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가 있다.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동물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고, 동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왕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리기 위해 무덤 근처 길가에 세운 비)가 있다.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명주군 왕릉
<2014.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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