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1105

신라 문무왕 장례길(8) - 경주 기림사 용연폭포

신라 문무왕 장례길(8) - 경주 기림사 용연폭포 신문왕은 이렇게 문무왕과 김유신 장군이 화(化)한 해룡과 천신으로 부터 무가대보의 대나무를 얻었다. 이제 서라벌 도성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왕은 감은사에서 묵고 17일에는 기림사(祈林寺) 서쪽 냇가에 이르러 수레를 멈추고 점심참을 치렀다. 태자 ..

신라 문무왕 장례길(7) - 경주 이견대(利見臺)

신라 문무왕 장례길(7) - 경주 이견대(利見臺) 삼국유사에 인용된 '감은사사중기(感恩寺寺中記)'에 의하면 문무왕이 왜병을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처음 창건하였는데,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어서 동해바다의 해룡이 되었다. 감은사는 아들 신문왕이 681년 7월 7일에 왕위에 올라 682년에 완공하였다. 금당 ..

신라 문무왕 장례길(6) - 경주 감은사터

신라 문무왕 장례길(6) - 경주 감은사터 왕이 평상시에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은 뒤에는 원컨데 나라를 수호하는 큰 용이 되어 불교를 떠받들고 국가를 보위하리라"하니 법사가 말하기를 "짐승으로 태어나서(畜報) 용이 되어도 좋겠습니까?"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세상 영화를..

신라 문무왕 장례길(5) - 경주 문무왕릉

신라 문무왕 장례길(5) - 경주 문무왕릉 경주 양북면 봉길리 해변에서 약 200미터 떨어진 바다에 있는 신라 제 30대 문무왕의 수중릉은 대왕암이라 불린다. 문무왕은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당나라의 세력을 몰아내어 삼국통일을 완수한 영주(英主)이다. 위대한 업적을 남겼던 문무왕이 재위 21년 만인..

신라 문무왕 장례길(4) - 경주 수렛제길

신라 문무왕 장례길(4) - 경주 수렛제길 문무왕의 장례행렬은 고문외정을 떠나 동해로 향했다. 그 장례행렬이 어디로 갔는지는 잘 알려져 오고 있지 않지만 많은 신하들과 군사들, 그리고 짐을 옮기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장비가 무척 많았으리라 짐작된다. 그러자면 서라벌에서 대왕암까지 평탄하고 가..

신라 문무왕 장례길(3) - 경주 사천왕사터 문무왕릉비

신라 문무왕 장례길(3) - 경주 사천왕사터 문무왕릉비 사천왕사터 남쪽에 두기의 석조귀부가 동서로 대립해 서있다. 두기 모두 비신과 이수가 결실되었고, 귀부의 머리 부분도 없어졌다. 귀부는 남향하였고 크기는 길이 약 210cm, 폭은 서쪽귀부 약 160cm , 동쪽귀부 약 170cm이며 귀부의 등에는 비좌 주변의 ..

신라 문무왕 장례길(2) - 경주 능지탑(陵只塔)

신라 문무왕 장례길(2) - 경주 능지탑(陵只塔) 능지탑은 황수영박사가 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한 이후 거의 정설로 굳어져 왔다. 즉 이곳이 고문외정이라는 것이다. 이곳을 발굴하엿을 때 흙에 탄 흔적이 발견되어 장작을 태운 흔적으로 추정하였던 것이다. 그후 40여년..

신라 문무왕 장례길(1) - 경주 월성(月城)

신라 문무왕 장례길(1) - 경주 월성(月城) 가을 (681년)7월 1일에 (문무)왕이 죽었다. 시호를 문무(文武)라 하고 여러 신하들이 유언에 따라 동해 어구 큰 바위 위에 장사지냈다. 민간에서 전하기를 왕이 화(化)하여 용이 되었다 하고 또 그 바위를 가리켜 대왕석(大王石)이라 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