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문무왕 장례길(2) - 경주 능지탑(陵只塔)
능지탑은 황수영박사가 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근거하여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한 이후 거의 정설로 굳어져 왔다. 즉 이곳이 고문외정이라는 것이다. 이곳을 발굴하엿을 때 흙에 탄 흔적이 발견되어 장작을 태운 흔적으로 추정하였던 것이다. 그후 40여년간 그렇게 굳어져 학설로 받아들여졌다. 이곳이 정말 고문외정일까?
*능지탑(陵只塔)
*능지탑(陵只塔)
*능지탑(陵只塔)
능지탑은 방형의 2층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되었는데 현장에는 상당수의 연화문 석재들이 따로 남아있어 원형과 다르게 복원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층 옥신에는 각 면에 3구의 십이지신상을 배치하였다. 그러나 남쪽 뱀상, 동쪽 화랑이상 및 용상은 결실되어 새로운 석재로 보충하였다. 토단 낙수면 중앙에 상층 옥신부를 돌기둥으로 결구하였고 그 위에 초층과 같이 연화석을 놓았다. 상층 상부도 역시 토층으로 낙수면으로 처리하고 그 중앙에 자연석의 보주를 놀려놓았다.
*추정 금당터
*연화문 석재
*십이지신상(개상, 현위치는 돼지)
십이지신상도 문복과 무복이 섞여있고 조각수법도 차이가 있다. 북쪽면의 쥐상은 문복을 입고 다른 상에 비하여 다소 크며 낭산 동쪽의 추정신문왕릉터의 십이지신상과 크기가 일치하고 있어 이곳에서 옮겨온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쥐상은 본래 쥐가 아니라 호랑이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뿐만아니라 능지탑의 개상은 쥐상이며, 돼지상은 개상으로 판명되었다. 1970년에 능지탑의 기단부를 발굴조사하였을 때 석조방단의 중심부에서 소조여래좌상의 파편이 사방에서 확인되었다. 따라서 초창기에는 사면에 흙으로 만든 큰 불상을 봉안한 감실과 같은 목조건물이 지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즉 능지탑은 불전과 탑을 겸한 이형탑이거나 또하나의 방형분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십이지신상(개, 현위치는 돼지)
*십이지신상(호랑이, 현위치는 쥐)
*십이지신상(소)
문무왕의 시신은 죽고 나서 10일이 지나면 고문(庫門) 바깥 뜰에서 서국(西國)의 의식에 따라 화장하였다. 이는 문무왕의 유언에 따른 것이다. 그러면 '고문외정'은 어디인가?
고문은 제후가 천자를 만날 때 통과하는 다섯 문 가운데 하나로 두번 째 문이다. 이 다섯문을 천자5문(天子五門)이라 하는데 바깥족에서부터 고문(皐門), 고문(庫門), 치문(雉門), 응문(應門), 노문(路門)이 그것이다. 그런데 고문(庫門) 양쪽에는 종묘(宗廟)와 사직(社稷)이 있다. 이때 황제를 중심으로 좌묘우사(左廟右社), 즉 왼쪽에 종묘가, 오른쪽에 사직이 자리한다. 또 신라의 왕궁인 월성은 왕경의 남쪽에서 북향하고 있다.
*십이지신상(토끼상)
*십이지신상(말상)
*십이지신상(양상)
한편 월성 북쪽의 동부사적지 건물터의 초석 배치구조를 연구한 결과 중국의 종묘건물의 구조와 일치함이 밝혀졌다. 첨성대 앞 도로의 유구를 발굴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이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곳이 신라의 종묘 건물터라면 사직건물터는 그 동편에 있을 것이고 종묘와 사직 사이에 고문이 있을 것이다. 고문(庫門)은 월성 북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십이지신상(원숭이상)
*십이지신상(닭상)
<2007. 4. 15>
'◈한국문화순례◈ > 서라벌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라 문무왕 장례길(4) - 경주 수렛제길 (0) | 2007.04.30 |
---|---|
신라 문무왕 장례길(3) - 경주 사천왕사터 문무왕릉비 (0) | 2007.04.29 |
신라 문무왕 장례길(1) - 경주 월성(月城) (0) | 2007.04.27 |
경주 월지(月池, 안압지) (0) | 2007.04.23 |
경주 동천동 출토 '東'銘 수막새(圓瓦當) (0) | 2007.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