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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이 살던 태고의 집 - 고성 왕곡마을 성천집

蔥叟 2017. 8. 25. 08:42

평민이 살던 태고의 집 - 고성 왕곡마을 성천집

 

성천집은 19세기 말 성천 사는 부인을 얻어 기와집을 지어서 분가하여 살다가 가세가 기울어지면서 기와집은 매각하고 6.25후 후손 행원이 초가를 짓고 살던 집이다.

 

한옥에는 저마다 표정이 있다. 한옥 감상은 그 표정을 읽어 내는 일이다. 왕곡마을의 한옥은 방들이 사슬처럼 이어지는 오밀조밀함이 특징이다. 그 안에서 숨쉬던 우리 민초의 애환을 읽어 내는 것은 이곳 한옥을 감상하는 의미를 더 크게 한다. 때로 그 속에 소 울음소리가 섞이기도 했을 것이다. 양민의 생활 속에서 생겨난 집이니 집 어디에서도 화려함을 느낄 수는 없다. 나무가 풍성한 산속에 살다보니 대갓집처럼 큰 부재로 집을 지어 내부 구조가 우람하기까지 하지만, 임부(姙婦)가 양쪽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등에 아이까지 들쳐 업은 모습이라고 할까? 생활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왕곡마을 한옥에서 도시의 성형미인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수수한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담백함만은 기대해도 좋다. 그 담백함은 어쩌면 이성계를 반대했던 함부열이 자기가 죽은 후에도 자식들이 이성계에게 해코지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깊은 산중에 자리를 잡았던 마음에 닿아 있다. 그의 바람대로 후손들은 출사를 하지 못했지만 자자손손 이어져 왔다. 어쩌면 권력무상의 깨우침이 핏속으로 전해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성천집

 

▲성천집

 

▲성천집

 

▲성천집

 

 

 

<2017.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