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전김양묘

蔥叟 2006. 5. 28. 07:12

경주 전김양묘

 

 이 무덤은 신라하대의 제45대 신무왕과 46대 문성왕때의 공신이었던 김양의 무덤으로 전하고 있다. 묘는 별다른 특징이 없는 원형봉토분으로 무열왕릉과 김인문묘 사이에 있다.

 김양은 아주 극적인 인생을 살다간 사람이다. 42대 흥덕왕은 늦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으나 836년 후사가 없이 죽게 된다. 그러자 그 사촌 계열에서 왕위 쟁탈전이 벌어졌다. 이때 김균정과 아들 김우징이 한편에 서고 김제융과 김명이 다른 편에 서게 되는데 이때 김양은 김균정의 편에 서게 된다. 그러나 김균정이 화살에 맞아 죽고 김제융 편의 승리로 끝나고 김제융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43대 희강왕이다. 김우징은 청해진으로 도망을 가고 김양은 서라벌에 남아 있다가 1년 후에 역시 청해진으로 피신하였다가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맞이한다는 조건하에 장보고의 군대를 이끌고 경주로 진격하게 된다. 이때 서라벌에서는 희강왕을 죽이고 김명이 왕위에 올랐으니 이가 바로 44대 민애왕이다. 장보고의 군대를 이끌고 경주에 진격한 김우징은 민애왕의 정부군과 격전 끝에 민애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45대 신무왕이다. 그러나 신무왕 역시 7개월만에 병으로 죽자 그의 아들이 왕위에 오르게 되니 이가 46대 문성왕이다. 그러나 장보고의 딸을 왕비로 책봉하려 하나 골품제 사회인 신라에서 해도인(海島人, 섬사람)을 왕비로 책봉할 수 없다는 반대에 부딪혀 결국 거절하게 되고 장보고의 군사력이 두려워 자객 염장을 장보고에게 보내 그를 살해하여 후환을 없애고 청해진도 폐쇄하기에 이른다. 그후 서해가 혼란해지면서 신라는 점점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김양은 김균정에서 시작하여 그 아들 김우징(신무왕) 그리고 문성왕에 이르는 3대에 걸쳐 충성을 다한 인물이었다. 김양이 857년 50세의 나이로 죽자 문성왕은 서발한(舒發翰)으로 추증하고 부의(賻儀)와 염장(殮葬)을 모두 김유신의 장례예법에 따라 하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무덤을 태종무열왕의 능열(陵列)에 배장(背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무덤 자체에 꾸밈이 없고 평범하여 신라하대의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전김인문묘(앞의 큰무덤)와 전김양묘(뒷편 작은무덤)

 

*전김양묘

 

*전김양묘

 

 

<2006.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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