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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간월사터 석조여래좌상

蔥叟 2016. 2. 5. 10:24

울산 간월사터 석조여래좌상

 

간월사터 석조여래좌상은 오랫동안 노천에 방치되어 있어서 광배가 파손되었고 대좌도 완전하게 남아 있지 않지만 울산지역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유일한 불상이다. 높이는 1.35m이며 전체 높이는 2.52m이다. 1960년대에 이 주민에 의해 논에서 발견, 버려진 불신과 불두를 찾아 1979년 목 윗부분은 떨어져 나간 것을 수리·복원하여 세웠고, 보호각은 1979년에 세운 것을 2009년에 수리하였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단정한 입과 긴 눈, 짧은 귀 등의 표현에서 온화하고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눈은 살짝 아래로 내려보고 있어서 시선 처리가 어색하다. 머리 위에 올라 있는 육계는 낮고 넓게 퍼져 있어서 쉽게 구분이 되지 않으나 머리카락은 둥근 소용돌이 모양이. 양쪽 귀는 짧고 위쪽으로 올려져 머리와 붙어 있는 듯해 머리 모양과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 단단하게 세운 목에는 삼도가 크고 뚜렷하다. 신체는 어깨가 좁고 가슴 또한 빈약한데, 이처럼 위축된 불신이기는 하지만 인체의 형태를 세련되고 깔끔하게 처리하였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어 아래를 향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취하고 있으며, 왼손은 다리 위에 얹어 손바닥은 위를 향하고 있다. 단정한 얼굴과 신체에 비해, 두 손이 크고 형식화되어 약간 어색해 보인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몸에 밀착되어 신체의 윤곽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하며, 얇게 빚은 듯이 유려하게 흘러내리는 형의 평행 계단식 옷주름은 단정한 불신과 잘 조화되고 있다. 대좌는 상대의 앙련(仰蓮 : 위로 향하고 있는 연꽃)과 하대의 팔각복련(八角覆蓮) 안상석(眼象石), 그리고 맨 아래에는 안상이 새겨진 팔각대석이 놓여 있다. , 중대는 없고 대신 중대의 위치에 완전한 하대석이 하나 놓여 있는데, 이 하대석은 현재 법당 앞에 놓아둔 다른 두 석불상들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이 여래상의 존명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그러나 낮은 육계와 경직된 신체표현과 도식적인 옷주름 표현 등 양식적인 모습으로 볼 때 제작 시기는 통일신라 후반기인 9세기대로 추정되며 간월사의 금당에 안치됐던 것으로 보인다. 전체의 형태는 잘 남아 있는 편이고 목과 오른손은 떨어져 나간 것을 수리 복원한 것이다. 받침인 대좌(臺座)의 일부와 불상 뒤 원광인 광배(光背)가 없어졌으나, 전체의 형태는 잘 남아 있는 편이다. 목 윗부분은 떨어져 나간 것을 복원한 것이고, 불당(佛堂)은 1979년에 세운 것이다. 옷은 U자 모양의 계단식 법의(法衣)이다. 손은 왼손을 무릎 위에 놓고 오른손을 내리어 땅을 가리키고 있는데, 이런 손모양을 항마촉지인이라고 한다. 불상을 모셔둔 대좌(臺座)는 3단으로 되어 있는데,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화려한 편이다. 어께 부분이 약간 좁고, 몸은 풍만하나 양감(量感)이 부족한 통일신라 말기 불상 조각의 양식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높이는 1.35m이다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석조여래좌상 상호

 

▲석조여래좌상 상호

 

▲석조여래좌상 상호

 

▲석조여래좌상 상호

 

▲석조여래좌상 상호

 

▲석조여래좌상 상호

 

▲석조여래좌상 대좌 동물조각

 

▲석조여래좌상 대좌 동물조각

 

▲석조여래좌상 대좌 동물조각

 

 

 

<2015. 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