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의 부여 - 부여 장하리 삼층석탑
고려시대 초기의 탑이다. 고려시대에 한산사寒山寺라는 절이 있던 곳이다. 백제의 옛 땅이었던 충청·전라도에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양식을 모방한 백제계 석탑이 몇 개 전하고 있는데 이 탑 역시 그런 계열에 속하는 탑이다. 이 탑을 비롯하여 서천 비인오층석탑, 정읍 은선리삼층석탑, 강진 월남사터삼층석탑 등 충청도와 전라도 지방에는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는 백제양식을 이어받은 탑들이 여러 개 있다.
땅 위에 자연석에 가까운 바닥돌을 깔고 그 위에 같은 돌로 너비를 좁히면서 3단의 기단을 만들었다. 탑신은 네 귀퉁이에 위로 오를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기둥 모양을 새겼고, 그 사이에 긴 판돌을 세워 면을 이루게 하였다. 동서남북 사면에 감실모양이 있는데, 우주와 면석의 약화된 모습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감실은 목탑에 많이 나타나던 것으로 불상을 모시는 방을 의미한다. 석탑에서는 대부분 이를 형상화하는데 그처 모양만을 새기는 정도이다 지붕돌에는 구멍을 내어 청아한 소리를 내는 풍탁을 단 흔적이 있다.
전체적으로 탑신의 몸돌이 높고 지붕돌은 지나치게 넓어 안정감이 없어 보인다. 정림사지오층석탑을 모방하였다고는 하지만 조형감각이나 수법에서 훨씬 떨어지는 작품이다. 세련된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달리 오히려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1931년에 탑신 1층의 몸돌에서 상아불상, 목제탑, 다라니경 조각 등이 발견되었으며, 1962년 해체 수리시에는 2층에서 지름 7㎝, 깊이 12㎝로 사리를 두는 공간이 둥근 형태로 발견되었는데, 그 안에 41개의 사리가 들어있었다.
이 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3층몸돌의 면석이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네 귀퉁이에 긴 기둥을 세우고 기둥과 기둥 사이의 벽면에 해당하는 면석 또한 기둥만큼이나 세장하게 설정하여 그 경쾌함과 상승감이 살아나고 있다. 그런데 3층에 이르러서는 이와 같은 구성을 포기하고 면석을 위쪽으로 반만 깎아놓았다. 만일 1,2층과 마찬가지로 면석을 모두 깊이 파놓았다면 길쭉하기만 하고 조형적인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을 터이지만 아래로 반만 깎아냄으로서 새로운 질서를 얻어낸 것이다.
백제계 석탑의 일반적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단부가 낮고 좁다. 1층 지붕돌의 처마끝 선에서 선을 수직으로 내렸을 때 선 안에 기단이 들어 있다. 신라석탑의 기단이 높고 넓은 것에 비교되는 확연한 특징이다. 둘째, 각 탑신부는 안쏠림이 강하여 전체적으로 사다리꼴 모습이다. 각 층의 지붕돌 추녀가 매우 얇고 경사도가 편평하여 시각적으로 지붕이 날렵하게 보인다. 셋째, 초기 백제 석탑처럼 크기가 작아 하나의 돌로 조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백제시대 큰 석탑에서처럼 각 부분의 부재들을 따로 제작하여 결구하는 아주 오래된 옛 방식을 따르고 있다.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장하리 삼층석탑
<2014.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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