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금강문화권

고려시대의 부여 - 부여 대조사 삼층석탑

蔥叟 2014. 8. 13. 06:24

 고려시대의 부여 - 부여 대조사 삼층석탑

 

대조사는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서 부여군 남쪽의 임천면을 휘감고 있는 성흥산 중턱에 자리 잡은 사찰로 백제 성왕 5년에 승려 겸익이 5년간에 걸쳐 창건한 천년 고찰이다. 겸익은 양나라를 거쳐 인도를 다녀온 구법승려로, 인도에서 불경을 가져다가 번역하여 백제의 불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대조사 창건 설화에는 겸익의 이야기가 전한다. 겸익의 꿈에 관세음보살이 나타나더니 큰 새로 변해 날아갔다. 겸익이 큰 새를 쫓아 따라가 보니 성흥산 중턱 바위에 앉으므로, 그 곳에 절을 짓고 석불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대조사 사적기에는 527(성왕 5) 담혜(曇慧)가 세운 것으로 되어 있고, 부여읍지에는, 백제불교를 중흥시킨 겸익이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두 기록이 다른 까닭은 알 수 없으나 6세기 초에 건립된 것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 고려 원종 때 장로인 진전에 의해 중창된 이래, 여러 차례 중수 ·개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대조사 전경

 

▲대조사 삼층석탑

 

대조사 창건에 관련된 또 다른 전설이 있다. 백제 성왕 때, 성흥산 토굴에서 수행하던 노스님이 있었다. 참선 중에 봄볕이 따사로워 잠시 낮잠을 청하였다. 꿈에 눈부신 황금빛의 큰 새 한 마리가 서쪽에서 날아와 스님의 토굴 앞 큰 바위에 앉았는데, 황금빛 큰 새를 보는 순간 관음보살로 변하였다. 이와 같은 꿈은 며칠간 반복되었다. 노스님은 이 꿈이 범상치 않음을 간파하고 임천골 성주에게 아뢰었다. 임천골 성주는 노스님과 함께 큰 새가 앉았다는 바위로 갔다. 그 순간 꿈이 현실이 되어 황금빛 큰새가 바위에 앉아 있더니 잠시 후 새는 관음보살로 화현했다. 이 소식은 백제 성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이에 성왕은 사비로 천도할 시기가 왔음을 직감하고 이곳에 사찰을 짓도록 했는데 10년이 걸리는 대규모 불사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공사현장에는 황금빛 큰새가 매일 날아와 울어주며 주위를 밝혔다. 새소리에 일꾼들은 피곤을 잊고 공사에 전념하여 5년 만에 절을 완공할 수 있었고, 황금빛 큰 새가 나타났다하여 대조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대조사 삼층석탑

 

▲대조사 삼층석탑

 

대조사 원통보전 앞에 서 있는 탑으로, 원래 탑신 없이 옥개석 3장만 남아 있었는데, 1975년 부근에서 탑신이 발견되어 다시 세운 고려 초기의 3층석탑으로 높이 약 520이다. 탑은 풍화로 인하여 전체적으로 암갈색을 띠고 있다.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 주는 기단을 2층으로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을 올려놓은 모습인데, 2·3층 탑신과 상륜부는 새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대석과 1층 탑신, 옥개석은 화강편마암이고 2, 3층 탑신과 상륜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대석과 1층 탑신은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220크기의 하대석 위에 4매로 된 면석을 올리고 남·북의 면석에 각기 우주와 탱주를 조각한 이중기단이다. 상대갑석은 2중 각형의 탑신받침이 있으며, 낙수면이 거의 수평에 가깝다. 탑신은 옥개석 및 옥신석이 모두 1매석으로, 2층 옥개석은 2단 받침이며 1층과 3층 옥개석은 3단 받침으로 표현되어 있다. 옥신석에는 우주만 나타나 있다. 지붕돌의 처마는 가운데에서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 이르러 가볍게 위로 들려있다.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낮아 안정감을 주고 있는 탑으로,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

 

▲대조사 삼층석탑

 

 

 

<2014.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