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시대의 부여 - 부여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고분군은 사비시대(538~660)의 백제 왕족 묘로 추정된다. 그리고 구조적으로는 판석으로 짠 직사각형의 널방에 꺾임천장을 갖춘 소위 능산리형돌방무덤으로 집약될 수 있다. 이러한 능산리형돌방무덤은 부여 일대뿐만 아니라 충청도·전라도 지역에 광범위하게 분포하며 고분의 축조 시에 엄격한 규제의 흔적이 엿보이기 때문에 백제의 지방통치와 밀접히 관련된 것으로 판단된다. 고분은 야산의 남사면에 줄을 지어서 배치되어 있는데 동서 양쪽으로 나지막한 구릉이 흘러내리고 있다. 묘역의 선정에 상당한 정성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1915년과 1917년 일본 학자들에 의해 6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그중 4기가 발굴조사 되었다. 1965년에 다시 2기의 고분이 발견되어 현재 모두 8기가 알려졌다.
그중 동상총은 지름 21m 가량의 원형봉토를 갖추었으며 봉토의 자락에서는 둘레돌이 확인되었다. 매장주체시설은 널길이 널방의 남벽 중앙에 딸린 굴식 돌방무덤이다. 널길은 끝이 약간 넓게 벌어지며 짧은 편이다. 널방의 평면은 직사각형이며 단면은 천장부가 평탄한 육각형의 평사천장으로서, 전형적인 능산리형돌방무덤이라고 할 수 있다. 널방 내부에는 부부를 합장하기 위해 2개의 널받침이 장축방향인 남북방향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동하총은 부여지방에서는 유일한 벽화고분이다. 널방의 평면은 역시 직사각형으로서 잘 다듬은 판석을 이용해 만들었다. 천장도 역시 판석으로 덮었으나 다른 고분과는 달리 납작천장이다. 널방의 바닥 면에도 넓적한 돌을 깔았으며 다시 이 위에 판석을 이용한 널받침을 설치했다. 널의 부속금구가 출토되었다. 널방 네 벽에는 돌 표면에 직접 그린 사신도가 남아 있었으며 천장에는 연꽃무늬를 교차시켜 배치하고 그 사이에는 비운무늬를 그려 넣었다.
그 밖의 고분들도 대개 커다란 판석을 이용하여 상자 모양의 직사각형 널방을 구성하고 그 중앙에 널길을 마련한 소위 능산리형돌방무덤들이다. 능산리고분군 중 가장 규모가 큰 중하총의 널방 벽면은 아래에서부터 3단까지는 수직으로 쌓아올렸으나 그 이상은 돔(Dome)식으로 둥그렇게 내경시킨 점이 이채로우며 널방 입구는 1장의 판석으로, 널길 입구는 작은 돌들을 쌓아서 폐쇄했다. 대부분의 고분이 극심하게 도굴당해 출토유물은 별로 없다. 다만 중상총과 7호분에서 출토된 약간의 금동제식금구를 통해 당시 공예기술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능산리 고분군
<2014.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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