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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의 부여 - 부여 송국리 유적

蔥叟 2014. 7. 25. 06:24

선사시대의 부여 - 부여 송국리 유적

 

청동기시대의 취락지이다.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밝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하천과 평지에 인접한 낮은 구릉과 대지 위에 100여 기 이상의 집터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청동기시대의 집자리 33기와 비파형동검, 옹관묘(독무덤), 붉은간토기, 민무늬토기, 돌도끼 등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집터는 평면 형태에 따라 둥근 것과 긴 네모꼴인 것이 있으며, 둥근 집터는 30150cm 깊이로 땅을 파서 만든 수혈식주거지로, 한쪽 벽을 얕게 파서 문을 만든 듯하다. 화덕자리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다수의 저장용 구덩이가 발견되었다. 바닥 중앙에 1m 내외의 긴 타원형 구덩이를 파고 그 구덩이 안에 몇 개의 둥근 구덩이를 만들었다. 네모꼴 집터는 30미만으로 땅을 판 반움집이나 지상식에 가까운 것으로 기둥구멍이 발견되지 않았으나, 주춧돌이 있는 발달된 집 형태를 하고 있다.

 

집터 안에서는 토기와 석기가 많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무문토기와 붉은 토기(홍도), 검은 간토기(흑도)가 나왔다. 무문토기는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을 하여 이전의 무문토기와 달라 송국리식토기라 불린다. 돌널무덤(석관묘)에서 비파형 동검과청동끌이 나와 당시 송국리 사람들이 청동기를 만들어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비파형 동검은 검날의 모양이 비파와 유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검날의 중앙에 등뼈처럼 도드라진 마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다른 동검과 명백히 구분되는 비파형동검만의 특징이다. 중국 랴오닝성지역에서 주로 많이 출토되어 랴오닝성동검이라고 하며, 고조선을 상징하는 유물로 일명 고조선식동검으로도 불린다. 1974년 부여송국리유적에서 출토된 이후 여수 적량동, 창원 진동리, 서천 오석산, 대전 비래동, 춘천 우두동 유적 등 한반도 전역에서 출토되고 있다.

 

이 동검은 대부분 고인돌에서 출토되었는데, 무덤의 크기나 부장품 등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지배계층의 권위와 정치적 통합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돌칼, 돌화살촉, 방추차, 돌도끼를 비롯하여 다양한 석기들도 출토되었다. 그 밖에 많은 양의 불탄 쌀과 벽체에 세웠던 판자가 불탄 채로 나오기도 하였고, 청동도끼 거푸집(동부용범)이 출토되었다. 청동도끼 거푸집은 부채날형 청동도끼의 틀로서 요령지역의 것과 닮은 것이다. 집터 서쪽에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무문토기 가마터가 확인되었다. 송국리 집터는 유물을 토대로 기원전 76세기 전에 농경과 수렵에 기반을 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며, 청동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

 

▲송국리 유적

 

 

 

<2014.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