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나라 - 경주 토함산 불국사 범영루
불국사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맞닥뜨리는 누각이 범영루이다. 오른쪽으로 자하문과 왼쪽으로 안양문을 거느리고 있는, 불국사 전면부의 중심축이 되는 건축물이다. 청운교와 백운교에 연결된 자하문은 대웅전에 닿는 문이고, 안양문은 연화교와 칠보교를 거쳐 극락전에 들어서는 문이다.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을 하늘에 펼치고 있는 범영루는 雄姿가 대단하다. 하지만 양편 돌다리의 아름다움에는 감탄하면서도 정작 범영루의 존재에는 무심하다. 범영루가 불국사 전면의 중심건축이 아니라 자하문이 중심축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자하문 왼편에 좌경루가 있는데, 범영루는 우경루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범영루 오른편 극락전 영역을 대웅전 영역보다 한 단계 낮춰 보고 그 존재를 무시한 데 따른 것이다.
▲범영루
▲범영루
하지만 극락전이 대웅전에 비해 격이 낮을 이유는 없다. 자하문이 중심이라면 범영루가를 굳이 범영루라 이름할 까닭이 없어진다. 우경루라고 부르면 될 것이다. 따라서 범영루는 좌경루에 대칭되는 개념이 아니라 우경루는 따로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실제로 범영루는 정명 1칸, 측면 3칸으로 단층인 현재의 모습보다 원래는 훨씬 컸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불국사 기록에 범영루에 오르는 계단이 별도로 있음을 보면 최소 2층 이상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범영루를 비롯한 전면의 무각과 돌계단의 형태는 1970년대에 이루어진 불국사 복원의 대표적 실패작이라고도 한다.
佛國寺古今創記에 의하면 범영루의 원래 이름은 須彌梵鐘閣이었다. 세칸의 종각으로 수미산 모양의 팔각정상에 누를 짓고 그 위에는 108명이 앉을 수 있고 그 아래에는 五丈竿을 세울 수 있는 높이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108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한 것은 불교에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百八煩惱를 뜻하는 것으로 많은 번뇌를 가진 인간을 제도한다는 의미가 내포된 것이다. 須彌山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존재하는 상상의 산, 세상의 중심인 곳으로 중턱에는 사왕천이 있고, 꼭대기에는 제석천의 궁전이 있으며, 부처는 거기서 온 세상에 법을 설한다. 범영루는 불국사가 어째서 불국토의 구현체인지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다.
▲범영루
범영루(泛影樓)는 그림자가 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국사 범영루 앞에는 가로 40m, 세로 25m의 큰 蓮池가 있었다. 그런데 불국사 복원 당시 그 연못은 복원대상에서 제외돼 지금은 휑한 마당만 있을 뿐이다. 연지는 그 자체로 극락을 상징하기도 하고, 此岸과 彼岸을 나누는 경계이기도 하다. 범영루의 그림자는 바로 연지에 떠 있었던 것이다. 연못에 범영루의 그림자가 비친 모습을 상상하면 극락정토를 연상하게 된다. 또 아침마다 연지에서 피어오르는 자줏빛 안개로 한층 신비했을 불국사의 모습을 그려보면, 연지를 복원하지 않은 것은 큰 실수라 여겨진다. 자줓빛 놀이 어리는 문이라는 뜻에서 자하문(紫霞門)이라는 이름이 붙었던 것이다.
범영루의 누각은 특이한 형태의 돌기둥(석주)으로 떠받쳐져 있다. 석주는 좌우에 두 개인데 판석을 십자형으로 엇갈려 맞물리도록 정교하게 짜맞추었다. 아래쪽에서 위로 갈수록 조금식 좁아지게 4단까지 올리고, 5단부터는 위쪽이 넓어지게 8단까지 쌓아 올려서 두 석주 사이 공간의 빈 모양이 항아리 같기도 하고 연꽃 봉오리를 연상케도 한다. 어떤 이는 범종의 소리를 형상화한 것이라고도 한다. 또한 돌의 모양은 4단까지의 판석모양과 다른 양끝 족의 버선코 모양으로 조각되어 아래쪽의 것과 위쪽의 것이 겹쳐지면 하나의 조각이 같아 보이도록 복잡하고 정교한 짜임의 형태로 도안되었는데, 이 두 석주가 세워짐으로써 두 석주 사이의 공간 투형은 항아리형으로도 보이고 안상형으로도 보여 독립된 석주는 석주대로 두 석주 사이의 공간은 공간대로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범영루
▲범영루
석주 아래에는 붉은 기운이 감도는 화강석으로 세운 석축이 있다. 석축은 두 층으로 나누어지는데, 아래는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있는 그대로 쌓아 올렸고, 그 위에 다듬은 돌들을 정연하게 쌓았다. 아래 자연석과 위의 다듬은 돌들은 톱니처럼 서로 맞물리게 하는 그랭이기법으로 연결해 놓았다. 그 때문에 제멋대로 생긴 자연석과 인공의 매끈한 돌이 서로 부딪치지 않고 화합을 이룬다. 그 조형미가 묘하다. 자연석은 수미산 주변의 구름을, 정교하게 쌓은 상층부는 수미산 천상의 세계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범영루 안에 들어서면 돌로 된 거북의 등에 法鼓가 놓여있다. 범영루의 종은 불국가 복원 당시 별도의 종각을 마련해 거기로 옮겼다. 종각에 북이라니! 범영루 자체의 모습도 그렇고, 연지나 법고도 그렇고 참 얄궂은 복원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불국사의 모습은 본래 불국사 모습이 아닐지도 모른다. 충분한 고증과 논의 없이 단기간에 밀어붙이기식으로 이루어진 복원. 어렵겠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연구해서 천년 불국의 모습을 온전히 되찾아야 할 것이다.
▲범영루 기단
<2012.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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