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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법흥동 군자정(君子亭)

蔥叟 2012. 6. 8. 00:18

안동 법흥동 군자정(君子亭)

 

   정침 옆에는 임청각의 별당이자 사랑채인 군자정(君子亭)이 있다. 군자정은 목조 건물로는 보기 드물게 임진왜란을 겪은 오래된 건물이다. 군자정은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별당 건축으로,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된 대청이 남향으로 앉아 있고, 그 왼쪽에 온돌방 4칸이 연접하여 ‘ㅏ’자 모양을 취하고 있다. 온돌방의 한 부분은 각주를 세워 굴도리를 얹은 간단한 구조로, 홑처마로 구성하였다. 군자정은 대청과 방 4칸의 구조가 다르다. 대청은 이익공구조에 팔작지붕이고 방은 민도리 3량집이다. 왜 이렇게 구조를 달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으로 단아한 모습에 화려한 누마루에 단아한 맞배지붕이 그런대로 잘 어울리는 집이다. 

 

   그러나 대청은 원주를 사용하였고, 그 위에 이익공 계통의 공포(栱包)와 그 사이에 화반을 1개씩 배치하였으며, 겹처마로 만들었다. 공포는 건물의 외면에서는 쇠서의 형태를 갖추지 않고 간소하게 초공으로 꾸며져 있다. 벽은 회벽을 치고 대청 주위에는 판문을, 온돌방에는 빗살문을 달아놓았다. 군자정은 단청을 올렸던 집이다. 1767년 이종악李宗岳이 중수하면서 작성한 중수기에 의하면 7대조가 병인년에 단청을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해가 1626년에 해당된다. 지금을 색이 바래 외부에서는 단청한 흔적을 찾기가 힘들고 내부에서만 단청한 흔적을 찾을 수 있는데 그것도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다. 
 
   군자정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사람의 호연지기를 키울만 하다. 철도로 짤리고 콘크리트 건물로 혼탁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마음을 확뚫리게 한다. 왜 이곳에 군자정을 지었는지 한눈에 이해가 된다. 이런 경관을 바라다보고 살아온 석주 이상룡선생은 나라를 구하겠다는 큰 뜻을 품고 모든 재산을 팔아 모든 가족과 함께 만주로 망명한 후 독립운동에 전 생애를 바쳤다. 집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그냥 드러나지 않는다. 집안 내력과 함께 집의 가치는 같이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이 집을 만들지만 집은 사람을 만든다고 처칠은 말했다. 군자정 대청에는 이현보(李賢輔) 등의 시판(詩板)이 걸려 있으며, 안동 임청각의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군자정

 

▲군자정

 

▲군자정

 

▲군자정

 

▲군자정

 

▲군자정 앞 석물

 

▲군자정 계단

 

▲군자정 아궁이

 

▲군자정 대청

 

▲군자정 대청

 

▲임청각 편액

 

 

 

<2012.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