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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전헌강왕릉(傳憲康王陵)

蔥叟 2009. 5. 23. 03:33

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전헌강왕릉(傳憲康王陵)

  

   신라 하대의 왕릉으로 봉분 높이 4m, 지름 15.8m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분이며, 봉분 하부에 지대석을 깔고 4단의 호석을 돌렸다. 내부구조는 연도가 석실의 동쪽 벽에 치우쳐 있으며, 석실의 크기는 남북 2.9m, 동서 2.7m이다. 벽면은 비교적 큰 깬돌을 이용하여 상부로 갈수록 안쪽으로 기울게 모서리를 죽이는 방식으로 쌓았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묘도를 갖추고 있으며, 연도의 크기는 길이 142cm, 너비 128∼96cm이다. 석실 내에는 서벽에 접해서 2매의 판석으로 된 시상석이 있다.

 

   전헌강왕릉은 1730년 이전까지 피장자를 알 수 없는 왕릉이었다. 경주김씨에 의해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기록에 따라 헌강왕릉으로 지정되었다.

 

○十二年, 秋七月五日, 薨. 諡曰<憲康>, 葬<菩提寺>東南.

12년, 가을 7월 5일,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헌강이라 하고,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헌강왕전> 

 

   하지만 현재의 보리사가 신라 당시에도 보리사였다는 증거가 없는 상태이며, 방향 또한 보리사 동남쪽이 아니라 정남쪽이어서 논란이 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왕릉이 동일한 장소에 조영된 것은 46대 문성왕릉과 47대 헌안왕릉이 공작지(孔雀地)에, 49대 헌강왕릉과 50대 정강왕릉이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지냈다고 하였다. 

 

   공작은 불교적 용어로서 '공작'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불교경전도 많이 전한다. 인도 최초의 고대 통일제국을 세운 마우리아 왕조(BC 317∼BC 180)는 한역(漢譯) 불전(佛典)에서 ‘공작왕조’라 번역된다. '마우리아'라는 이름은 ‘공작(孔雀)’을 뜻하는 속어에서 유래된다고 전해진다. 또 불교에서 '공작재(孔雀齋)'는 공작명왕을 본존으로 삼는 불교의 밀교에서 병마를 물리쳐달라고 비는 재의 이름이다. 어쨌든 공작은 불교와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다. 경주 남산은 수많은 불탑과 불상이 남아 전하는 불교의 성지로서 신성한 불국토이므로 이곳을 가리켜 공작지라 불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 공작지가 남산의 또 다른 이름이라면 전헌강왕릉은 46대 문성왕릉임이 틀림없다.  

  

▲전헌강왕릉 가는 길

 

▲전헌강왕릉 가는 길

 

▲전헌강왕릉 가는 길

 

▲전헌강왕릉 가는 길

 

▲전헌강왕릉 가는 길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전헌강왕릉

 

▲상석

 

▲4단 호석

 

 

 

                                                                                <2009. 5.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