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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남평문씨 세거지 - 수봉정사(壽峯精舍)

蔥叟 2008. 10. 21. 08:01

달성 남평문씨 세거지 - 수봉정사(壽峯精舍)

 

   광거당과 함께 수봉정사는 일제 식민지라는 혹독한 시련기에도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모여들어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웠으며, 사라져가는 조선 양반의 자부심과 권위를 떨친 역사적인 장소이다. 수봉정사는 1936년에 수봉 문영박 선생의 학문을 이어받고, 후손들의 교육을 위하여 건립한 서당이다. 도산 서원 앞에는 도산 서당과 농운 정사가 한 곳에 모여있다. 서당은 선생이 생활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는 요즘의 교실이며, 정사는 학생들이 기숙하면서 공부하는 지금의 교실 내지 기숙사로 사용하였다.

 

   한일합방 이후에 전국 곳곳에 수많은 서당과 정사가 급격히 늘어났다. 선비들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새로 등장한 학교 제도를 반대하고, 우리의 전통 교육 제도인 서당을 많이 세웠다. 바로, 서당과 정사는 일본 침략에 대한 저항 정신의 상징이다.

 

  정면 6칸 측면 2칸에 팔작 지붕을 하고 있는 수봉정사는 남평 문씨의 막강한 경제력을 한눈에 드러낸다. 한마디로 우리 전통 건축이 얼마나 튼튼하고 정교하게 지어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모범이라 할 수 있다. 일곱 개의 느티나무 재질의 기둥은 지붕의 무게를 힘차게 받쳐주고, 시각적인 안정감을 보여준다. 대들보 또한 한옥으로는 대단히 육중하다.

 

  수봉정사는 일제 시대에 건립한 건물로서, 전통 한옥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조선의 건물은 철저히 천원지방 (天圓地方) 사상을 지켰다. 궁궐과 관청의 건물은 둥근 기둥을 사용하였다. 일반 한옥은 네모진 기둥으로만 세워야 했다. 수봉정사는 둥근 기둥으로 세웠고, 건물의 규모에 비해서 기둥의 수와 대들보가 훨씬 더 많고 굵직굵직하다.

 

  왼쪽 마당에는 일부러 작은 산을 쌓고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거북 모양의 괴석(怪石)과 두 그루의 커다란 소나무와 모과나무 배롱나무 등을 심어, 자연 속에 노닐고 있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이 동산은 마당 한 가운데 배치하지 않고,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게 않도록 꾸미는 동양적 정원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담장 밑에는 꽃 계단을 꾸미고, 매화나무 단풍나무 앵두나무를 심어, 계절마다 손님을 불러모았다. 처마 밑 수봉정사 현판은 당대의 명필 오세창 선생의 글씨로 알려졌다.

 

▲수봉정사 솟을대문

 

▲수봉정사 솟을대문

 

▲수봉정사 솟을대문

 

▲수봉정사

 

▲수봉정사 거북이

 

▲수봉정사

 

▲수봉정사

 

▲수봉정사 굴뚝

 

▲수백당(守白堂, 우당 유창환)

 

▲수봉정사

 

▲수봉정사 

 

▲쾌활(快活, 추사 김정희) 편액

 

▲경유당(敬遺堂, 위창 오세창)

 

 

 

<2008.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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