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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미추왕릉지구 출토 각배(角盃)

蔥叟 2006. 11. 21. 08:12

경주 미추왕릉지구 출토 각배(角盃)

<국립경주박물관>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지구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주변의 폐고분들을 발굴하다가 C지구 제5호분에서 각배(角盃)와 받침이 출토되었다.

 

   이 각배는 고배의 받침에 각배가 놓일 수 있도록 고리를 만들어 밑부분을 고정시키게 되어 있는데 입구 부분에도 따로 받침이 있었던 것 같다. 이 토기는 경주에 있는 신라 특유의 적석목곽분에서 발견되었으며 기대에 뚫려있는 투창도 서로 엇갈린 형태로 배치된 2단 투창(透窓)으로 신라식이다.

 

 

   각배는 그리스어로 리톤(Rhyton)이라고 하는데 동물의 뿔을 잘라 만든 것이다. 실제 동물의 뿔로 만든 것 이외에도 토제(土製)로도 동물의 뿔 모양으로 본떠 만든 것도 있다. 뿔대신 다른 재료로 만든 것을 각형배(角形盃)라고도 부른다.

 

   각배는 초원지대에 살던 유목민들이 즐겨 쓰는 술잔이다. 그래서 금제, 은제, 골제의 각배들이 그리스, 이스라엘, 이란, 키르기즈스탄, 몽골, 한국 등에서 발견된다. 한국세서는 신라와 가야유적에서만 발견된다.  

 

    

   기록상 한국에서 각배를 맨 처음 사용한 사람은 석탈해이다. '삼국유사 석탈해조'에 보면 각배가 등장한다.

 

   하루는 탈해가 동악(吐含山)에 올라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심부름하는 자(白衣)를 시켜 물을 구하여 마시는데 심부름하는 자가 물을 길어 가지고 오던 도중에서 먼저 마시고 탈해에게 드리려 하니 각배가 입에 들어붙어 떨어지지 않앗다. 그래서 (탈해가) 나무랐더니 심부름하던 자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다음 설혹 가깝고 멀고 간에 감히 먼저 마시지 않겠소이다."하니 그때야 그만 각배가 입에서 떨어졌다.

 

<삼국유사 석탈해조>

 

   여기서 각배는 임금이 될 사람이 쓰는 물건이고 신통력이 있는 그릇으로 나타난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석탈해는 왜국 동북천리에 있는 다파나국 사람으로 완하국 함달파왕의 부인이 낳은 알에서 태어난 인물인데 배를 타고 남하하여 가락국에 도착하였다. 가락국에서 수로왕과 재주 내기를 하다가 패퇴하여 신라땅 아진포에 도착하였다. 신라 사회에서 왕의 사위가 되었다가 왕으로 등극한 인물이다.

 

   탈해가 매로 변하자 수로는 독수리가 되고 또 탈해가 변하여 참새가 되니 수로는 어느새 변하여 매가 되었는데 변하는 시간이 극히 짧았다. 잠시 후 탈해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자 수로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탈해는 수로 앞에 엎드려 항복하였다.

 

 <삼국유사 가락국기>

 

   인간이 동물로 변신하는 이야기는 시베리아 야쿠트족 원주민인 샤먼들 간의 등급매기기 작업으로 널리 유행하던 것이다. 석탈해와 수로의 변신경쟁 이야기가  시베리아 샤먼들의 변신 경쟁 과정의 내용과 똑같은것은 석탈해와 수로의 정신적, 문화적 고향이 시베리아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지혜롭고 비범하여 왕위에 까지 오른 인물이 각배를 사용하였다는 것은 각배가 왕-지혜-초자연성이 연관된 물건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각 지역에서 발견된 각배의 기능에는 공통점이 나타난다.

 

   각배는 사회의 지도층 인물과 연관되어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대관식 때 왕의 머리에 붓는 기름을 각배에 담았고 신라의 왕인 석탈해도 각배를 갖고 있었으며 신라나 가야의 왕릉급 무덤에서 금관과 함께 각배가 발견된다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각배는 물과 관계가 깊다.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각배에 샘물이 나오게 하는 마력을 지닌 페가수스를 조각했고 석탈해가 동악에서 샘물을 찾을 때 각배를 사용하였다.  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고 각배가 생명을 유지시키는 상징적인 물건임을 암시한다.

 

   각배는 신성한 동물과 관련이 있다. 그리스에서는 말, 중앙아시아에서는 말과 산양, 신라, 가야에서는 말과 관련되어 있다. 이런 동물들은 어떤 민족의 신화나 전설 속에서 인간에게 도움을 주었던 동물들이다.

  

 

 

<2006. 1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