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무이산 문수암
문수암은 한국의 남단인 남해의 한려수도를 한눈에 바라보는 마치 비단 위에 수를 놓은 듯한 수려한 절경에 자리잡고 있다. 문수암은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한 도량으로 전해진다.
신라 신문왕 8년(688) 의상대사가 정진을 하려고 남해 금산을 향하여 행각하던 중 날이 저물어 이곳 청량산 부근 어느 마을에 유숙하게 되었다. 그날 밤 정진을 한 후 선정에 들었는데 홀연히 다 낡아헤어진 누더기를 입은 두 걸인이 찾아와 하는 말이 이 부근에 수도도량으로 적합한 청량산이 있으니 스님께서 금산으로 향하시기 전에 꼭 이 부근의 청량산을 한번 답사해 보라고 청하였다. 그러면 저희들은 내일 이른 아침에 다시 찾아와 스님을 안내하겠다며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선정에서 깨어난 의상대사는 정중에 두 걸인을 만나 말을 들은 것이 너무나 희유한 일이라 생각하고 그 집 주인에게 이 부근에 청량산이 있느냐고 무러보니 20리쯤 가면 청량산이 있다고 말하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선정 중에 만나던 두 걸인이 그 댁을 방문하여 의상스님을 청량산으로 친히 안내하였다.
기암괴석의 사이사이로 만고의 세월을 참아 견디어낸 청청한 소나무의 수려한 운치며 우뚝 솟은 청량산 정상에서 광활하게 펼쳐진 동남서북의 사방을 육안으로 관망할 수 있는 대자얀의 신비적인 절경을 자세히 살펴본 후 과연 이곳이 불조의 혜명을 계승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최적의 수도 도량임을 알고 잠깐 정진하고 있던 중 두 걸인은 남대에서 중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천연 석벽 사이에 문수단이 있는데 우리는 저 석벽 사이에 살고 있다며 두 걸인은 그곳으로 향하더니 석벽 사이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의상스님은 문수단이 있다는 곳을 자세히 살펴보니 두 걸인은 어디로 자취를 감추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너무나 신비스러워 석벽 사이를 들여다 보니 불가사의하게 시현하신 문수, 보현의 두 보살의 상호만이 원만하게 장엄되어 있었다. 전날 의상스님이 유숙처에 두 걸인의 몸으로 낮춘 이들은 바로 문수 보현의 화신인 것이었다.
의상대사가 불보살의 현현가피가 현존하고 있는 이곳에 최초로 사찰을 창건하고 절 이름을 문수암이라 하고 이 도량에 주석하며 정진과 교화에 전념하였다고 한다. 신라 당시에 이곳은 명승지로 이름이 높아 국성화랑들이 심신을 수련하던 곳이며 화랑들의 무술 연마하는 모양이 마치 선인과 같다하여 산이름을 무이산(武夷山)이라 하고 이곳 마을 이름도 무선(武仙)이라 하여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문수암 원경
*문수암
*문수암 문수전
*문수암 문수전
*문수암 편액
*문수암 후불벽화
*문수단
*문수단 암각글씨
*청담스님 부도
*청담스님 부도
*청담스님 사리탑비
*석등
*문수암 약사전
*약사전과 약사여래
*약사여래좌상
*약사전 불화. 남산 신선암 보살상을 닮았다.
<2006.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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