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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불상

蔥叟 2018. 1. 31. 21:15

영주 신암리 마애여래삼존불상

 

영주 신암리 들녘 보호각에 봉안된 마애삼존여래좌상은 바윗돌 네 면에 불상을 새겼던 사방불이였으나 마모가 심해 현재는 삼존상만 확인된다. 삼존상 역시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한데 특히 눈, 코, 입은 민간신앙의 영향으로 훼손된 듯하다. 전체적으로 고부조의 작품이며 신라 7세기경에 제작된 작품이다. 지정받을 당시에는 마애여래삼존상에 이끼나 이물질로 덮혀 있었고, 불상의 무릎 아래 부분도 땅에 묻혀 있었으나 보존처리와 정비사업을 거친 후 전체 모습이 드러나고 불상 외면도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삼존상은 여래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보살상이 서 있는 구조이다. 본존상은 오른손을 가슴 위로 들었고 왼손은 무릎 위에 놓아 손바닥을 보이는 시무외·여원인의 수인을 하고 결가부좌로 앉아 있다. 몸에 비해 큰 머리는 나발이 없는 민머리이며, 높이 솟은 둥근 육계에 마모로 갸름한 얼굴형에 긴 귀만 확인된다. 유난히 좁은 어깨에 어린 아이 같은 신체비례 등 간격을 이루는 옷주름 등 간결한 특징을 보인다. 광배는 두광이며 가장자리에 약간의 불꽃 무늬 장식이 확인된다.

 

보살상 역시 유난히 좁은 어깨라든지 신체비례, 광배 등의 형식은 본존불과 거의 유사하다. 몸에는 두 단으로 형성된 U자형으로 늘어진 천의를 입었고 손 모습은 마모로 정확한 확인은 어렵지만 좌협시보살은 복부에 모으고 있으며 우협시보살은 합장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삼존의 구도와 불보살상의 특징은 인근에 위치한 영주 가흥동 마애여래삼존상(보물 제221호)과 가장 유사하며 민머리에 단구의 비례, 부드러운 양감 등은 경주 남산 삼화령 미륵삼존불상과 비교되는 점에서 대체로 신라 말기에서 통일기로 접어 드는 7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영주 신암리 마애삼존여래좌상은 마모가 심하지만 사방불의 이른 예인 점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마애불이지만 민속적인 바위신앙의 요소가 불교와 융합되어 나타난 사례인 점도 주목된다. 신라 7세기에 유행했던 마애불의 특징은 물론 신라의 불교 신앙이 중앙에서 지역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불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마애여래삼존불상

 

▲마애여래삼존불상

 

▲마애여래삼존불상

 

▲마애여래삼존불상

 

▲마애여래삼존불상

 

▲마애여래삼존불상

 

▲마애여래삼존불상

 

 

 

<2017.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