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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성혈사 나한전

蔥叟 2018. 2. 1. 08:29

영주 성혈사 나한전

 

성혈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신라 의상대사가 소백산 기슭에 초암사를 지을 때의 일이다. 매일 서까래가 조금씩 없어져서 이상하게 여긴 스님이 서까래를 찾아 인근 숲을 돌아다니다 한 곳에 수북히 쌓여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스님은 서까래가 쌓여 있던 주변의 풀을 주워 모아서 그 자리에 초막을 지었다. 그 초막이 바로 성혈사의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스님이 초암사를 짓고 수행을 하다 협소한 탓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도 전한다. 절 아래 300m 쯤 떨어진 곳에는 성인이 나왔다는 굴이 있는데, 내용 그대로 절 이름을 성혈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나한전은 조선 중기에 세워진 사찰 건물로 지형에 따라 건물을 자연스럽게 배치한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곳이다. 1984년 나한전을 보수할 때 발견된 기록에서 조선 명종 8(1553)에 창건되고 인조 12(1634)에 다시 보수한 것이 확인되었다. 낮은 기단 위에 있는 앞면 3, 옆면 1칸의 작은 건물로 다포계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지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면 3, 측면 1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은 배흘림기둥에 가깝게 다듬으면서 벽신을 세우지 않고 문짝을 달았다.

 

나한전 안에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나한상들이 있다. 흰색으로 덧칠한 상태이며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을 지녀 절의 창건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 준다. 연화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고 지권인을 맺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옷주름의 표현이 약간 경직되고 형식화된 몸체 등으로 볼 때 통일신라시대 후반기 9세기 불상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무릎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윤곽선이 비교적 자연스럽고 곡선으로 처리된 옷주름 등으로 보아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 불상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대좌는 불단에 가려져 있어 세부를 확인하기는 어려우나 3단으로 조성된 연화좌인 것은 확실하며, 불상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양 손은 파손되어 보수하였도 양 무릎의 끝 부분이 약간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인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나한전

 

▲나한전

 

▲나한전

 

▲전면 공포

 

▲후면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공포

 

 

 

<2017. 12.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