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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애환 - 경주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

蔥叟 2017. 7. 27. 07:20

백성들의 애환 - 경주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

 

府尹金相公奭鎭蠲弊遺惠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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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曰□□ □□□□

□□□□ 永世□□

戊寅三月日

 

부윤 김석진 상공 견폐유혜비

국역생략

 

무인년(1873) 3월 어느 날 세우다.

 

본 선정비는 글자가 심하게 훼손되어 거의 판독할 수가 없다. 비문의 내용 가운데 蠲弊라는 용어가 있다. 이 의미는 본 선정비가 건립된 10여 년 후의 府尹 金哲熙 不忘碑를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綏陵香炭村으로 지정된 동해면 주민들에게 경주 兵鎭에서 柴炭戶役을 거듭 부과하였다. 이에 주민들이 苦役을 하소연하자 부윤 김석진이 잡역을 감면시켜 주었다. 따라서 주민들이 遺惠碑를 세워 그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부선생안에 따르면, 부윤 김석진은 통정대부의 품계로, 병자년(1876) 4월 임명되어 동년 윤 524일 부임하였고, 정축년(1877) 1215일 체임되어 떠났다.

 

동해면은 수릉의 향탄촌으로 지정된 이후 주민들은 나라에 향과 숯을 진공하였다. 그런데 이를 바치는 과정에서 중간에 감리들이 농간하여 여러 가지 폐단이 발생하였다. 부윤 이능섭이 부임하여 나라에서 지정한 수량대로 진공하라고 시정하자 주민들이 그 은혜를 잊지 못했다. 그 후 이번에는 慶州鎭 병영에서 동해면에 시탄의 호역을 부과하였다. 주민들이 그 고통을 참지 못하여 궁궐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다. 마침내 시정하라는 공문이 하달되었다. 이 같은 공문을 받은 즉시 부윤 김철희가 시행하자 역시 주민들이 그 고마움으로 비를 세웠다. 본 선정비는 본래 비각이 있었고, 현 위치에서 남쪽으로 100미터 지점에 있었으나 도로를 확장 포장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가운데)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가운데)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가운데)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

 

▲부윤김상공석진견폐유혜비

 

 

 

<2017.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