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의 애환 - 경주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府尹李相公能燮祛瘼善政碑
伊昔東封 有監有吏
弊由玆生 害無不至
辛賴我侯 擧受其賜
刻石紀功 海闊山峙
辛未十月日
부윤 이능섭 상공 거막선정비
옛날 동산의 봉표에
도감과 아전이 있어 보살폈다.
그런데 폐단은 여기서 생겨나
해독이 이르지 아니한 데 없었다.
다행이 우리 부윤께서
나라가 내린 일을 모두 받들어 행하였다.
비석에 그 공을 새기니
바다는 넓고 산은 높도다.
신미년(1871) 10월 어느 날 세우다.
동해면은 함월산에 봉해진 封標로 인하여 여러 가지 폐단이 있었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내용은 본 선정비를 건립하고 약 20년 후에 세운 ‘府尹 金哲熙 不忘碑’에도 상세히 실려 있다. 익종으로 추대된 효명세자의 능인 綏陵의 香炭村으로 지정된 동해면은 함월산에서 향과 숯을 채취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민폐가 발생했다. 곧 監吏들이 작폐를 야기시켰던 것이다. 許蘭(1836~1909)의 竹谷遺稿를 보면, 선정비 비각을 건립할 때 보낸 통문과 비각상량문이 있다. 여기에서 ‘東封之監吏 永罷’라는 말이 있는데 감리들의 중간 폐단이 극심했음을 일러주고 있다. 부윤 이능섭이 부임하여 나라에서 규정한 대로 香炭을 채취하게 하고 잡역을 면제시킨 데 대해 주민들이 감복하여 본 비석을 세웠다. 조선시대에 경주 출신으로 문화게 급제하고 경주 부윤을 지낸 사람은 이능섭뿐이다. 李能燮(1812~1871)의 자는 公理이고 본관은 여주이며 호는 老石이다. 강동면 양동리에서 태어난 그는 무신년(1848)에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도승지, 경주부윤, 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이능섭의 문집은 간해되지 않았다. 후손 李完植의 집에 보관된 유고에는 본 선정비각의 상량문이 실려 있다.
부선생안에 따르면, 부윤 이능섭은 가선대부의 품계로, 신미년 6월 20일 임명되어 동년 25일 부임하였다. 9월에는 신병으로 직위가 바뀌어 이조참판에 임명되었고, 9월 19일 본집으로 돌아왔다.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부윤이상공능섭거막선정비
<2017.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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