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書聖의 고향 - 소흥 난정 곡수유상

蔥叟 2017. 5. 5. 06:33

書聖의 고향 - 소흥 난정 곡수유상

 

曲水流觴

고대의 풍류 가운데 ‘유상곡수’(流觴曲水)라는 풍류가 있다. 흐르는 (곡수 : 구불구불한 물길)에 술잔을 띄우고 술을 마시는 풍류이다. 흐르는 물에다 술잔을 띄워 보내면 그 술잔을 받은 사람마다 시를 지어 화답하는 놀이다. 삼월삼짓날 정원에서 술잔을 물에 띄워놓고 잔이 자기 앞에 올 때까지 시를 읊던 동양선비들의 풍류로 곡수연 또는 곡강연이라고도 한다. 경주의 포석정이 그러한 유상곡수의 풍류가 행해졌던 유적이다. 통일신라시대 정읍 태인에 태수로 부임했던 고운 최치원도 칠보 시산리에 유상대(流觴臺)를 만들어놓고 유상곡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대개 이 유상곡수의 풍류는 음력 3월 3일에 많이 행해졌다. 마음에 맞는 친지들이 둘러앉아 물에다 술잔을 띄우면 술잔이 둥둥 떠서 자기 앞에 온다. 물이 곡수(曲水)로 굽어서 돌기 때문에 앉아 있는 사람의 앞에 머물게 되어 있는 것이다. 물에 둥둥 떠오는 술잔을 받는다는 것은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흐르는 물가에서 이 놀이를 하는 이유는 상서롭지 못한 액운을 씻어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유상곡수는 제의적 성격이 강했다고 한다. 겨울을 나면서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악귀도 몰아내는 행위였다는 것이다. 중국 진나라 왕희지가 쓴 ‘난정기’ 라는 글에 3월 삼짓날에 흐르는 물에 몸을 담궈 나쁜 기운을 씻어 내는 의식을 치르면서 유상곡수 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이 유상곡수와 관련하여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이 ‘유상곡수’ 하면 생각나는 인물이 진(晋)나라의 왕희지(王羲之)이다. 그는 절강성 소흥현 회계산 북쪽에 있는 난정(蘭亭)에서 이루어졌던 유상곡수의 풍류모임에 관한 내용을 ‘난정서’(蘭亭書)라는 기록으로 남겼다. ‘난정서’는 내용 자체도 명문이지만, 그 서체가 또한 절세의 명필인 왕희지의 대표작으로 유명하다. 한자문화권에서 서예를 하는 사람치고 이 ‘난정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만큼 유명한 필첩(筆帖)이 ‘난정서’인 것이다. 왕희지 글씨의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그 모든 요체가 여기에 들어 있다. 계곡물이 저 위쪽에서부터 굽이굽이 휘감아 돌아오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절경에서 왕희지는 살았다. 그 옆의 바위 절벽에는 옥룡폭포(玉龍瀑布)라고 하는 폭포가 뿌연 물안개를 품으며 물길을 내리꽂고 있다.

永和九年歲在癸丑暮春之初會 于會稽山隂之蘭亭脩稧事 也羣賢畢至少長咸集此地 有崇山峻領茂林脩竹又有清流激 湍暎帶左右引以為流觴曲水 列坐其次雖無絲竹管弦之 盛一觴一詠亦足以暢敘幽情 是日也天朗氣清恵風和暢仰 觀宇宙之大俯察品類之盛 所以遊目騁懐足以極視聽之娛 信可樂也夫人之相與俯仰 一世或取諸懐抱悟言一室之內 或因寄所託放浪形骸之外雖 趣舍萬殊靜躁不同當其欣 於所遇蹔得於己怏然自足不 知老之將至及其所之既惓情 随事遷感慨係之矣向之所 欣俛仰之閒以為陳迹猶不能 不以之興懐况脩短随化終 期於盡古人云死生亦大矣豈 不痛哉每攬昔人興感之由 若合一契未嘗不臨文嗟悼不 能喻之於懐固知一死生為虛 誕齊彭殤為妄作後之視今 亦由今之視昔悲夫故列 敘時人錄其所述雖世殊事 異所以興懐其致一也後之攬 者亦將有感於斯文 

영화9년 계축년 모춘(3월) 초 회계 산음의 난정에 모여 수계행사를 열었다. 군현이 모두 이르고 젊은이와 어른들이 모두 모였다. 이곳은 높은 산과 준령이 있고 무성한 숲과 울창한 대나무 그리고 맑은 물이 흐르는 여울이 좌우로 띠를 둘렀다. 흐르는 물을 끌어 잔을 띄우는 물굽이를 만들고 순서대로 자리를 잡으니 비록 성대한 풍악은 없어도 술 한 잔에 시 한 수씩 읊으며 또한 그윽한 정회를 펼치기에 족하였다. 이 날은 맑은 날씨에 따뜻한 바람이 불어 화창하였는데, 우주의 드넓음을 우러러 보고 사물의 흥성함을 굽어 살피니, 경치를 둘러보며 정회를 펼침은 족히 보고 듣는 즐거움을 다하기에 참으로 기쁘기 한이 없었다. 무릇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한 평생을 살아가되, 어떤 사람은 벗과 서로 회포를 나누고, 어떤 사람은 정회를 대자연에 맞기며 유람을 한다. 비록 만 가지 빼어난 것을 취함과 버림이 다르고, 고요함과 떠들석함이 같지 않건만, 자신의 처지를 만족하며 잠시나마 스스로에 뜻을 얻으면 흔쾌히 스스로 흡족하여 장차 늙어 죽을 것도 모르는 법이다. 기쁨이 다시 권태로움에 이르고, 세상일에 따라 마음이 변하니, 느낌이란 단지 그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이전의 기쁨도 순식간에 곧 옛 자취가 되어버리니 더더욱 감회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하물며 사람 목숨의 길고 짧음이 비록 하늘의 이치에 달려있지만 결국엔 죽음에 이를 뿐이지 않는가. 옛사람이 이르기를 "죽고 사는 것은 역시 중대한 일이라" 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한가. 옛사람들이 감흥을 일으켰던 까닭을 살펴볼 때 마다 마치 약속한 듯이 일치하고, 아닌게 아니라 그들의 문장을 대하면 한탄함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삶과 죽음이 한 가지라는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오래 살고 일찍 죽는 것이 똑같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겠다. 오늘의 우리가 옛사람을 보듯이 후세 사람들이 오늘의 우리를 보면 또한 슬퍼하지 아니하랴. 오늘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이 모두 그 술회를 시로 적었으니 비록 후세에는 세상사가 달라진다 해도 느낌과 회포를 느끼는 이치는 한가지다. 훗날 사람들이 이 글을 보면 또한 느끼는 바가 있으리라.  

▲곡수유상

 

▲곡수유상

 

▲곡수유상

 

▲곡수유상

 

▲곡수유상

 

▲곡수유상

 

▲곡수유상

 

 

 

  <2017. 1.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