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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 흥법사터 삼층석탑

蔥叟 2015. 12. 18. 03:26

원주 흥법사터 삼층석탑

 

영봉산(靈鳳山) 아랫자락에 있는 흥법사가 언제 처음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적연국사(寂然國師) 영준(英俊)이 고려 태조 15년(932)에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것과 이곳에 있었던 진공대사탑비에서 진공대사가 태조 23년(940)에 이곳에서 입적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미 신라 말에 거대한 규모의 사찰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고려 태조가 흥법선원을 만들어 진공대사에게 교화를 맡기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인근의 거돈사, 여주 고달사 등과 더불어 고려 전반기 선종계 절로서 큰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 절이 언제 없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조선시대 전기가지 절과 진공대사탑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숙종 19년(1693) 이곳에 도천서원을 건립하였다가 1871년에 폐지하였다. 흥법사터는 1탑식 가람배치를 하고 있으며, 유물로는 삼층석탑과 진공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가 있다. 건물터로는 탑의 동쪽 10m 지점 축대 위에 중문으로 보이는 터가 있고, 탑의 앞면인 서쪽에 절의 중심 건물인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샘과 여러 건물터가 주변에 있고, 절의 동북쪽 산기슭에는 진공대사탑을 모셨던 자리가 남아 있다.

  

 흥법사터 삼층석탑은 2중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갖춘 고려시대 일반적인 탑의 모습을 하고 있다. 1층 기단에는 기둥을 새기지 않은 대신 안상을 새기고, 그 안에 땅으로 부터 꽃이 솟아나는 모습을 조각하여 고려시대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2층 기단의 면은 여러 장의 넓은 돌로 만들었으며, 모서리 기둥과 버팀기둥을 새겨 놓았다. 기단의 갑석 위에 탑의 몸돌과 만나는 부분은 3단으로 꺾어 놓았다. 탑의 몸돌은 한 면에 2개의 모서리기둥을 새겨 놓았다. 몸돌의 폭과 탑 몸체의 높이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줄어 탑의 윗부분이 빈약해 보인다. 탑의 지붕돌은 윗부분이 두꺼우며 물매가 급하고, 추녀 끝을 약간 치켜올려 놓았으며 처마의 받침은 4단으로 꺾어놓았다. 탑 위의 장식물로는 노반과 복발 만이 남아있다.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삼층석탑

 

▲탑신부

 

▲탑신부

 

▲기단부

 

 

 

<2015.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