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덕주사 남근석
남근석은 지방 각지에 흔히 세워져 있으나 세운 이유는 차이가 있다. 농사의 풍요와 액을 막기 위한 제사를 올리기도 하고, 마을 입구에 세워진 남근석은 마을을 지켜주는 수문신으로 여겨지고 잇다. 어느 곳에는 돌림병이 심하고 민심이 흉흉해져 그 원인을 알아보니, 마을의 형상이 여성의 성기 모양을 하고 있는 탓이라 하여 땅의 기운을 누르고자 이 남근석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남근석은 마을 여인네들의 바람기를 잠재우고, 아기 낳기를 소망하는 여인이 기도를 하면 아들이 생긴다는 말도 잇다. 농경사회에서 풍부한 생산력의 바탕이 되었던 性이 남근석으로 만들어지고 신성시되어 이처럼 민족의 고유 신앙이 되고 있다.
덕주사가 자리한 월악산은 소백산과 속리산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월악산의 정상을 靈峰이라 칭하는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두 곳 뿐이다. 옛 사람들은 태양을 陽이라 하고 달을 陰이라 했는데, 이것을 사람에 비유하면 양을 남자, 음을 여자라 했다. 월악산은 뒤편 수리산 족에서 바라보면 누워있는 여자의 얼굴모습을 닮은 형태라 월악산이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이 월악산이 풍수학적으로 陰氣가 왕성한 산이기에 옛 선조들은 월암산의 음의 地氣를 누르고 陰陽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이곳에 남근석을 세웠다.
월악산 덕주사에 전해오는 남근석은 3개로써 2개는 크기가 길고 하나는 작은데 그 중 하나는 가운데가 부러진 형태로 남아있다. 이와 같은 것은 안동을 안고 도는 영남산맥 중 한 곳에는 뒷산이 女根形이라 하여 그 왕성한 음기를 다스리고자 그 여근산과 대치되는 곳에 3개의 남근석을 세웠는데, 이 풍수적주들도 비슷한 의미였을 것으로 보인다.
덕주사의 남근석이 처음에는 월악산의 음기를 중화시키고자 세웠으나, 세월이 지나며 아들을 바라는 여인이나 또 소망과 행운을 기구하는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삶과 죽음을 이원화시키지 않았다. 인간의 생은 有限하고 우주의 모든 질서는 그 유한과 無限, 음과 양, 빛과 어둠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조상들은 이 모든 것들 속에서 영원과 불변의 진리를 채득했으며, 여기에서 탄생한 것이 祭儀였고 어떤 매개체를 통해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구원을 추구 했으며 그것이 민간에 전승되어 구원의 형태로 나타났다. 그들은 대상물에다 고사와 행복을 기구하며 풀이를 했다. 우리가 드물게 마을 어귀에서 볼 수 있는 장승의 괴기스러운 표정이나 덕주사의 남근석 등이 바로 생과, 삶 그리고 윤회의 진리를 체득한 우리 조상의 지혜로움이 응축된 상징인 것이다.
▲남근석
▲남근석
▲남근석
▲남근석
▲남근석
▲남근석
▲남근석
▲남근석
<2015. 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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