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릉 가는 길 - 경주 남간사터 석정
해목령을 후산으로 하여 많은 절이 세워졌다는 것은 남산에서 경주분지가 제일 가까이 있기 때문이지만, 나라를 지키는 소중한 곳인 남산성을 위한 염원으로 세워진 절들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부근의 많은 절 중에 창림사와 남간사는 가장 큰 절이었다. 남간사는 헌덕왕 12년(820) 이전에 세워진 것은 분명하지만 정확한 창건시기는 알 수 없다. 원화년간(元和年間, 806~820)에 일념(一念)스님이 남간사에 있으면서 신라에 불교를 일으킨 순교자 이차돈의 내력을 실은 '촉향분례불결사문(燭香墳禮佛結社文)'을 지었다. 남간사터는 길고 가는 산맥이 둥글게 원을 그리며 북쪽을 둘러막고 서쪽으로 굽이쳐 '문드미'라 불리우는 언덕으로 끝을 맺어 청룡산맥을 일구었다. 백호산맥은 아주 짧게 끝났으나 잧림사 언덕이 길게 뻗어 금광지(金光池)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심산이 아니라도 한없이 아늑한 느낌을 주는 길지이다. 앞을 내다보면 망산, 벽도산, 서형산, 장산 등이 솟아있고 그 사이로 멀리 단석산이 조산으로 드높게 보인다.
▲석정
지금 많은 주춧돌이 마을 집들의 기둥 밑에 깔리고 밭 기슭으로 밀려나 있으므로 건축의 규모나 가람배치 등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 곳에 남아있는 두 곳의 우물터와 하수구는 신라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다.신라시대 우물에는 언덕 밑이나 바위 틈에서 물을 퍼내는 샘물과 평지에 땅을 파고 두레박으로 물을 퍼 올리는 우물 두 종류가 있다. 언덕 밑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은 방형으로 돌을 쌓고 지붕을 덮은 것이 보통이고, 평지에 파놓은 우물은 원형이나 방형으로 돌을 짜 올리고 그 위에 돌을 다듬어 원형이나 방형으로 구멍을 뚫어 만든 우물 틀을 얹어 놓은 것이다.
▲석정
우물은 지표에서1.7m 깊이로 파고 자갈을 깐 다음 벽돌형으로 다듬은 석재를 방형으로 쌓아 올리고 2매의 판석을 합쳐서 한 변이 1.47m 되는 정사각형의 틀을 만들고 그 가운데 지름 86.5cm 되는 둥근 구멍을 파서 위에 얹어놓은 것이다. 우물 둘레에는 이중으로 태를 둘렀는데 원단은 직각으로 높고, 밑단은 곡면으로 낮게 변화를 주었다. 모양은 단순하나 맵시가 간결하고 시원스럽게 다듬어졌다. 우물 벽에 석탑재가 끼어 있으므로 이 우물이 만들어진 연대에 대해서는 검토를 하여야 하나, 하얀 화강석으로 정결하게 다듬어 덮은 우물 틀에서 신라시대의 격조 높은 생활수준을 엿볼 수 있다.
▲석정
또한 남간사터 동북쪽 모퉁이에 돌로 만든 홈이 하나 있다. ㄷ각 대석에 복숭아 모양으로 파 놓은 돌홈이 하나 있는데 밑으로 물이 빠지는 구멍이 하나 뚫어져 있다. 이 돌 홈은 쓰고 남은 더러운 물을 버리는 하수구인데 지극히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다. 하얀 화강석5으로 조각한 우물 틀에서 물을 퍼 쓰고 이렇게 아름다운 하수구에 물을 버리는 신라여인들의 정결한 성품이 돌 홈에 어리어 있는 듯하다. 이 우물은 분황사 석정, 재매정 등과 더불어 신라 우물의 원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석정
<201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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