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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화엄종찰 - 영주 부석사 부석

蔥叟 2012. 6. 22. 01:01

해동화엄종찰 - 영주 부석사 부석

 

   무량수전 서편 선묘각의 대칭되는 지점에 부석이 있다. 부석은 암벽 밑에 거대한 모습으로 묵중히 앉아 있다. 선묘설화는 부석으로 이어진다. 신라에 귀국한 의상은 중생을 교화하던 중 676년(문무왕 16) 태백산의 한 줄기에 절터를 발견하였다. 이곳에 이르러 지세를 살펴본 즉 화엄종지(華嚴宗旨)를 크게 선양할 수 있는 명산이었다. 그러나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교(異敎)의 무리 5백여명이 점령하고 있으므로 의상은 직접 그들을 만나 선하게 살 것을 당부하고 절을 짓게 해 달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들이 막무가내로 듣지 아니하여 고심하고 있었다. 이때 용으로 화신한 선묘가 공중에서 바라보니 순리로는 조사의 뜻이 이루어지기 어려움을 짐작하고 법력을 쓰기로 하였다. 갑자기 선묘룡이 나타나 번갯불을 일으키고 봉황이 나타나 큰바위를 세차례나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 이교도 무리들이 겁을 집어 먹고,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사찰을 건립한 것이 부석사이며 이교도들을 놀라게 하기 위하여 공중에서 세번이나 떴다는 큰 바위를 부석(浮石)이라 이름 짓고 봉황이 나타났다 해서 산 이름을 봉황산이라 불렀다.

 

   그리고 선묘룡(善妙龍)은 석용(石龍)으로 화하여 무량수전의 자리에 안좌하여 부석사의 수호신이 되려 하므로 조사를 크게 감격케 하였다. 지면에서 2척 깊이에 묻혀있는 48척의 석룡은 그 머리를 무량수전 주불(主佛) 밑에 두고 꼬리는 무량수전 앞 석등까지 펼쳐 있다. 이 석룡은 67년 5월에 신라 5악 학술조사단이 무량수전 앞 뜰에서 발굴하여 5m 가량의 석룡 하반부를 발견하는데 성공하였다. 부석에 전해지는 창건설화. 의상과 선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설화의 내용이야 내 남인들 모를 리가 있을까마는 자연이 빚어놓은 무심한 바위에도 전설이 있고 없고에 따라 순례자의 마음에 다가오는 느낌은 실로 엄청난 것이리라. 경주의 남산에도 신라팔괴의 하나로 전하는 부석이 있지만 선묘설화 같은 전설이 없기에 그저 신기한 모습으로 바라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부석사의 부석은 순례자의 발걸음을 잡고 놓아주질 않는다.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 이야기가 더 애절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부석

 

▲부석

 

▲부석

 

  

 

<2012. 5.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