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블 가는 길 - 경주 신대리 관문성
셔블. 새벌이다. 새벌은 동쪽에 있는 벌판이니 신라시대부터 경주를 일컫는 우리말이다. 경주와 울산의 경계지점에 있는 관문성은 현재 성문지와 창고지 등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성덕왕 때 일본군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쌓은 성으로 파악된다. 모벌군성(毛伐郡城), 문벌관문성(蚊伐關門城), 모화관문(毛火關門), 모벌관문(毛伐關門)으로 불리웠으며 후대에 대점성(大岾城) 으로, 그리고 관문성이라는 이름은 조선시대에 사용된 명칭이다.
▲신대리 관문성
▲신대리 관문성
○二十一年, 冬十月, 築<毛伐郡城>, 以遮<日本>賊路.
21년 겨울 10월, 모벌군성을 쌓아 일본의 침입로를 막았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성덕왕전>
○開元十年壬戌十月, 始築闕門於毛*大{火}郡. 今毛火村, 屬慶州東南境, 乃防日本塞垣也. 周廻六千七百九十二步五尺, 役徒三萬九千二百六十二人, 掌員元眞角干.
개원 10년 임술(722) 10월에 처음으로 모화군에 관문을 세웠다. 지금의 모화촌으로 경주의 동남경에 속했다. 이것은 일본을 방어하는 변방의 요새였다.-성덕왕 21년의 일로서 효성왕 때는 아니다. 삼국사기 신라고기나 지리지에도 모화군에 축성한 사실이 확인된다. 지금의 경북 월성군 외동면에 일부의 관문지가 남아있다.- 주위는 6792보 다섯 자인데, 소요된 역원(役員)은 39,262인이요, 감독하는 사람은 원진 각간이었다.
<삼국유사 효성왕조>
▲신대리 관문성 남문터
▲신대리 관문성 석각
관문성의 기저부는 커다란 장대석(길이 1.2m, 높이 0.3m 정도)을 길이 방향으로 놓은 후 그 위에 장방형의 돌을 쌓아 올렸다. 지금 경주시-울산시 경계지점에 복원되어 있는 관문성은 동쪽 끝에 위치한 신대리성의 모습을 보고 복원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벽은 가로 40~50cm, 세로 20~30cm의 잘 다듬은 돌과 자연석으롤 이용하여 우박천(牛朴川)을 사이에 두고 양편 높은 산에 동해를 향해 쌓았는데, 이것은 동해 쪽에서 침입해 오는 왜병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관문성은 문무왕 13년(673) 9월에 축조한 북형산성과 함께 경주평야의 동쪽, 즉 경주에 들어올 수 있는 가장 좋은 지역인 영일만과 울산만에 상륙하는 왜적을 방어하는데 큰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신대리 관문성 석각
▲신대리 관문성 석각
반월성의 주위가 1,23보인데 반하여 관문성의 길이가 6,792보 5척으로 그 규모가 커서 후세 사람들은 신라의 만리성(萬里城)이라고 불렀다. 지금은 모두 허물어지고 성문지로 추정되는 석축이나 창고지, 병사지(兵舍址) 등이 군데군데 남아있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남산성을 축조하는데 이용한 돌과 같이 잘 다듬은 돌을 자연석과 함께 쌓았다. 현존하는 남산성과 관문성의 성축성벽을 비교하면 관문성을 축조한 장방형의 성돌을 바른층으로 쌓으며 약간씩 뒤물려 쌓는 편축식의 축성술이 훳씬 발달된 축성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산성이 독립된 상을 에워싼 성곽인 반면 관문성은 산과 산을 연결하여 길게 축조한 특수한 양식의 산성이다.
▲신대리 관문성 석각
▲신대리 관문성 석각
현재 신대리성의 상부는 개축으로 무질서하게 작은 돌로 쌓아 놓았으나 하부는 정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입수구가 확인된 곳은 협축으로 쌓고 있는데 그 너비는 6.5m 현존 높이 약 2m정도 이다. 그리고 성벽상부는 양방면으로 여장처럼 쌓은 모습인 凹(전체너비 5.5m)의 형상을 하고 있다.
관문성의 동쪽 끝 신대리에 있는 산성을 별칭하여 신대리성이라 하는데 이곳 성벽에서 글을 새긴 석각이 10개 발견되었는데, 그 낸용은 성을 쌓을 때 각 군현이 담당한 불쪽 경계와 남쪽 경계, 그리고 담당구역의 길이를 표시한 것이다.
<1>
骨估南界 골고가 맡은 남쪽 경계
居七山北界 거칠산군이 맡은 북쪽 경계
受地七步一尺 맡은 거리는 7보 1척
▲신대리 관문성 들여쌓기
▲신대리 관문성
<2>
熊南界 웅이 맡은 남쪽 경계
骨估北界 골고가 맡은 북쪽 경계
受地四步一尺 맡은 구역은 4보 1청 8촌
八寸
<3>
□□北界 □□군이 맡은 북쪽 경계
□□□□
□□□□
<4>
押啄南界 압탁이 맡은 남쪽 경계
▲신대리 관문성
▲신대리 관문성
<5>
金京元千毛主作 北堺 금경의 원천모주가 짓는 북쪽 경계
受作五步五尺 맡은 구역은 5보 5척
<6>
金京道□ 금경의 도□가 짓는 북쪽 경계
作北堺 맡은 구역은 5보 5척
五步五尺
<7>
切火郡北界 절화군이 맡은 북쪽 경계
受地十步 맡은 구역은 10보 2척 7촌
二尺七寸
▲신대리 관문성 북문터
▲신대리 관문성 북문터
<8>
退火 퇴화가 맡은 남쪽 경계
南界
<9>
西良郡 서랑군(남쪽경계인지 북쪽경계인지 미상)
<10>
□□郡 □□군이 맡은 구역 5보5척의 북쪽경계
受地五步□
尺北界
각 군현이 담당한 길이는 평균 약 6보 3척으로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11.7m가 된다. 성의 둘레가 본래 1.8km이므로 당시 1보가 6척이며, 1척의 길이가 29.4cm였음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자경(字徑)은 대체로 4~7m이다.
▲신대리 관문성 북문터
<201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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