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을 찾아서 - 경주 굴불사터 남면 여래입상
굴불사터 사면석불의 남면에는 세련된 솜시로 훨씬 작은 크기의 삼존불(석가삼존불?)이 조각되었다. 현재 오른쪽 협시보살 전체와 왼쪽 협시보살의 머리가 탈락되어 잇다. 남면(南面)에는 원래 삼존불이 부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오른쪽의 보살상은 흔적뿐이고 현재는 머리가 없는 본존불입상과 보살입상만이 있다. 특히 이 남면의 불상들은 법의가 매우 얇게 몸에 밀착되어 있고, 가는 허리와 다리의 육감적인 선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게 조각되어 있어서 통일신라 전성기 불상양식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삼존불에서는 대개 본존을 크게 하고 좌우 보살을 작게 하는데, 이 남면의 삼존불은 남아있는 여래상과 보살상의 키가 거의 같은 점이 특이하다.
두분의 부처님은 표현기법상으로 봐서 석가여래로 추정된다. 인도의 조각수법인 Y자형의 옷자락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남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가운데 본존불은 머리가 얼어졌으며 우협시보살은 완전히 떨어져 나간 모습인데, 본존의 머리 부분과 오른쪽협시보살 전체를 일본인들이 떼어갔다는 기록이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반쯤 땅속에 묻혀있던 ‘사면석불’을 현재와 같이 전모를 볼 수 있게 파올린 것은 1914~1915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정을 들고 온 무법자에 의해 석가여래의 불두(佛頭)와 전신상(全身像)의 협시보살 부분이 감쪽같이 떼어져 어디론가 사라져갔다. …중략… 그들은 큰 바윗덩이의 암면(巖面) 부조(浮彫)의 하나인 남쪽면의 오른쪽에서 본존상의 머리와 협시보살상 전체를 기술적으로 쪼아 떼어간 정 자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중략… 그리고 몇 해 후 한일회담 문화재관계 한국대표로 일본에 건너갔던 황수영 교수는 교토대학 고고학 연구실에서 1915년께 찍은 경주 굴불사터 ‘사면석불’의 사진 원판들을 보았다. 거기서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나타나 있었다. 불두와 보살상을 떼어 간 직후의 사진이어서 그 자리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희고 생경한 상처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구열, 한국문화재 수난사>
경주지역 조선시대 불상의 훼손은 불두와 불신을 분리시키는 것이 주된 경향이며 대상은 환조불에 국한하였다. 그러나 굴불사터 사방불 남면의 경우는 마애불이며 고의적인 의도아래 정을 이용하여 입상 전체를 정교하게 떼어냈다는 점이 경주지역의 다른 불상과 다르게 훼손된 특징이다. 이러한 모습은 1930년대의 사진자료에서 확인된다고 하며 일제시대 초기 누군가에 의해 자행된 것으로 황수영은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의 사진은 공개하지 않았다.
▲굴불사터 사면석불 남면 여래입상
▲여래입상
▲여래입상
▲여래입상
▲여래입상 상호
▲여래입상
▲떼어낸 여래입상 흔적
<2011.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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