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금강산을 찾아서 - 경주 표암 마애사찰도(寺刹圖)

蔥叟 2011. 10. 18. 05:27

금강산을 찾아서 - 경주 표암 마애사찰도(寺刹圖)

 

   경주 금강산 표암(瓢巖)에서 통일신라 때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마애사찰도(寺刹圖)가 발견됐다. 표암 암벽 사이 초목 제거 작업을 하던 중 지상 5m 높이의 바위에 사찰의 건물과 탑, 인물 등이 새겨진 사찰도(寺刹圖)를 확인했다. 전체 크기는 가로 약 1.5m, 세로 약 1m이다. 사찰도에는 불전(佛殿)과 3층 석탑, 사찰의 깃발인 불번(佛幡)을 걸어놓는 당간(幢竿), 당간을 꽂아 세워두는 당간지주(支柱) 등 사찰의 모습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당간지주 우측하단에는 조그만 산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삼층마애탑은 상륜부에 찰주와 노반, 복발, 보주, 용차 등이 표현돼 있고 옥개부 양쪽에는 풍령이 음각돼 있다. 불전은 기단이 생략된 중층 건물(추정)로 용마루와 치미가 표현돼 있고 건물 내부에 불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은 육계가 표현돼 있고 수인은 명확하지 않으나 합장 형태다. 불전 뒤에는 높이 24㎝에 어깨 폭 9㎝로 합장한 모습의 승상이 서 있다.

 

   특히 당간지주에는 중앙부 양측면을 가로 지르는 당간걸이가 보이고 당간 끝에 불번(佛幡)이 걸려 있다. 불교의식을 거행할 때 매다는 불번이 바람에 날리는 듯 꼬리가 여러갈래로 갈라진 모습까지 묘사돼있어 중국 돈황 막고굴 제331굴의 벽화에 그려진 불번의 모습과도 닮아있다. 당간에 불번이 게양된 모습이 확인된 것은 그림이나 조각을 통틀어 국내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다. 불번은 원래 인도에서 군기였던 것이 불교에 유입되어져 도량(道場)의 마(魔)를 항복시키기 위하여 처음 사용하기 시작하였는데 나중에는 기능이 확대되어 교단의 표식으로, 또는 불보살의 항마에 대한 위덕을 나타내기 위한 장엄구로서 신앙적인 의식구로 승화되었다. 불번은 불전의 기둥이나 부처님이 모셔진 불단의 천개에 현수되거나, 법회가 있을 때 뜰 가운데 세우거나 탑의 상륜이나 풍탁에 메달아서 하늘 높은 곳에서 나부끼게 하여 부처님의 위력을 널리 알렸으며 이로써 수많은 중생들이 불교에 귀의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하였다.


   명문은 '天 寶 二 年(?) 月 夫 今(令) 子 上 世 也(?)'등 모두 12자로 밝혀졌다. 이 가운데 연호로 추정되는 '天寶'는 중국 당나라 연호인 천보(天寶, 당나라 742~756년)로 추정되며 '天寶二年'은 신라 경덕왕 2년(743)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사찰도는 8세기 중반 통일신라시대에 조각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사찰도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신앙의 대상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유력한 집안이 죽은 자의 극락왕생을 위하여 조각한 것 같다. 이처럼 명문 · 인물(승상)외에도 산문 · 당간 · 탑 · 불전 등 사찰의 건조물이 동일 암벽에 새겨진 것은 유일하며 당간에 불번이 게양된 모습이 묘사되거나 조각된 것은 국내 초유의 자료로 통일신라시대의 불교 조각사와 사상사, 사회사, 금석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표암 전경

  

▲표암

 

▲사찰도 전경

 

▲마애사찰도 전경

 

▲암각산문

 

▲당간지주 당간 불번

 

▲당간지주

 

▲삼층마애탑

 

▲불전

 

▲승려상

 

▲명문

 

▲'天寶'명문

 

▲'今(令) 子'명문

 

▲옆면 암각화

 

▲돈황 막고굴 331호굴 불번 모사도

 

 

 

<2011.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