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오대산 상원사
월정사에서 산 속으로 오대산 비로봉 동남쪽 기슭에 상원사가 있다. 상원사는 문수신앙의 중심지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성덕왕이 태자시절에 중대 지로봉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재위 4년에 진여원을 창건하고 문수보살상을 봉안한 것이 상원사 역사의 시작이었다고 한다.
신라 정신왕의 태자 보즐도-보천-는 아우 효명태자와 함께 하서부의 세헌각간의 집에 이르러 하룻밤을 지내고 이튿날 대령을 넘어 각기 1천명씩 거느리고 성오평에서 며칠을 놀다가 태화 원년 8월 5일에 형제가 함께 왜산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때 무리들 중에서 시위하는 자들은 그들을 찾지 못한 채 모두 서울로 돌아갔다. 형인 태자는 오대산 중대 남쪽 밑의 진여원 자리 아래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역시 풀로 암자를 짓고 살았다. 두 형제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하면서 수행했으며 동서남북중앙의 다섯 대에 나가서 공경하고 예배했다.
청색방위인 동쪽대의 만월형으로 된 산에는 관음보살의 진신 1만이 항상 있었으며, 적색방위인 남쪽대의 기린산에는 팔대보살을 우두머리로 한 1만의 지장보살이 항상 있었고, 또한 백색방위인 서쪽 대의 장령산에는 무량수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1만 대세지보살이 항상 있었으며, 흑색방위인 북쪽대의 상왕산에는 석가여래를 우두머리로 한 5백 대아라한이 항상 있었다. 또 황색 방위인 중앙대의 풍로산은 한편 지로산이라고도 하는데, 이곳에는 비로자나를 우두머리로 한 1만의 문수보살이 항상 있다. 그리고 진여원에는 문수보살이 매일 이른 아침에 36형으로 화하여 나타났다. 두 태자는 함께 예배하고 매일 이른 아침에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 1만 진신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
이때 정신태자의 아무 부군이 서울에 있어 왕위를 다투다가 죽음을 당했다. 나라 사람들은 네 명의 장군을 보내니 그들은 오대산에 이르러 효명태자를 만나매 만세를 불렀다. 바로 이때 오색구름이 오대산에서부터 신라에까지 뻗쳐 7일7야 동안 빛을 발했다. 이에 사람들은 그 빛을 찾아 오대산에 이르러 두 태자를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보즐도 태자는 울면서 돌아가려 하지 않으므로 효명태자를 모시고 돌아가 왕위에 오르게 했다. 왕위에 20여년 있었다. 신룡 원년(705) 3월 8일에 처음 진 여원을 세웠다 한다. 보즐도 태자는 언제나 골짜기의 신령한 물을 마셨다. 그리하여 마침내 몸이 공중에 떠서 유사강에 이르러 울진대국의 장천굴에 들어가 도를 닦다 다시 오대산 신성굴로 돌아와 50년 동안이나 도를 닦았다 한다. 오대산은 바로 백두산의 큰 줄기인데 각 대에는 항상 진신이 있다고 한다.
<삼국유사 명주 오대산 보즐도 태자 전기>
이후 조선 7대 세조가 이곳에서 기도하던 중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불치의 병을 고쳤고 친히 권선문을 작성하고 진여원을 확장하여 이름을 상원사로 바꾸고 원찰로 정하여 문수동자상을 봉안했다. 이후 몇 차례 중창되다가 1907년 수원화상이 방장으로 있을 때 크게 선풍을 떨쳤으며, 1951년 입적한 방한암 스님이 30여년 동안 이곳에서 지냈다.
▲상원사 표석
▲상원사
▲상원사
▲문수정
▲상원사 편액
▲청량선원
▲청량선원과 영산전
▲영산전
<2011.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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