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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 비림 단천자문(断千字文)

蔥叟 2009. 9. 13. 14:44

중국 서안 비림 단천자문(断千字文)

<비림박물관>

   

   張旭이 만취가 된 상태에서 글을 쓰고 깨어나보니 무슨 글을 썼는지 말아보지 못했다는 글씨이다. 장욱은 8세기 전반인 현종(玄宗) 때 활동하였는데, 육간지(陸柬之)의 아들 육언원(陸彦遠)으로부터 ‘간지서법(柬之書法)’을 전수받았고 명기(名妓) 공손대랑(公孫大娘)이 2개의 긴 천을 공중에 휘두르며 춤추는 것을 보고 초서(草書)의 진수를 깨달았다고 한다. 또 술을 좋아해 취하면 미친 듯이 붓을 잡았으며, 머리카락에 먹물을 묻혀 글씨를 쓰기도 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장진(張顚)이라고 했다.

 

  

▲단천자문(断千字文)

 

   당시 자유분방한 ‘초서(草書)’를 창시하여 초서의 제1인자로서 유명했다. 안진경(顔眞卿)과 이양빙에게 필법을 전수했고, 회소(懷素)와 고한(高閑)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전한다. 해서작품에 ‘낭관석기(郎官石記)’가 있고 초서 작품에 ‘자언첩(自言帖)’, ‘고시사첩(古詩四帖)’이 있다. 초서(草書)는 한자 서체의 하나인데 자획을 생략하여 신속히 쓰는 흘림글씨로 한(漢)나라 때에 비롯되었다.

 

   전한(前漢) 때에 예서(隷書)와 함께 일상 서체로 쓰였다는 것이 문헌과 서역지방에서 발굴된 죽간(竹簡)이나 목간(木簡) 유품에서도 증명되었다. 전한 무렵 전서(篆書)의 필기체로서 고초(古草), 후한(後漢) 초기에는 장초(章草)가 생겼다. 장초는 예서의 자획을 간략화한 것으로, 붓을 치키는 팔푼(八分)의 필법을 가진 기복이 심한 서체였다. 진(晉)나라 때부터 남북조시대에 걸쳐서는 초서가 더욱 발달하여 예술적이고 세련된 모습을 갖추었다.


   동진(東晉) 때는 장초가 쇠퇴하고 금초(今草)가 생겨 초서체의 전형을 이루었다. 금초는 한 자씩 차분히 쓰는 독초체(獨草體)와 붓을 떼지 않고 쓰는 연면체(連綿體)로 나누어지는데, 왕희지의 글씨는 그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당나라 때에는 더욱 분방해진 광초체(狂草體)가 개발되어 장욱(張旭)과 회소(懷素)가 그 대가로 활동하였다.

 

▲단천자문(断千字文)

 

時代 : 唐(公元618~907年)

书写 : 张旭

张旭, 字伯高, 是唐代杰出的书法家, 精通揩书, 尤善草书. 以 "狂草" 知名. 喜酒后呼威狂走, 然后落笔, 时人谓之 "张顚".  这里陈列的 <斷天字文> 共6石, 传说为张旭所书. 笔意纵橫, 錯落有致, 豪放而又不失規矩

 

시대 : 당(서기618~907년)

글슨이 : 장욱

장욱의 자는 백고이며, 당대의 걸출한 서법가이다. 특히 초서에 능통하였다. '광초'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술을 마신 다음 크게 울거나 미친듯이 달리기를 잘했다. 그리고는 붓을 들어 글을 썼다. 그래서 당대인들은 그를 '미치광이 장'이라 불렀다. 여기 쓴 단천자문은 6장의 돌로 조합되어있다. 장욱이 글씨를 썼다고 전해진다. 그는 붓을 종횡으로 휘둘렀고, 호방하기 이를데 없었지만 규범을 잃지 않았다.

 

 

 

 

<200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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