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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안 비림 석대효경(石台孝经)

蔥叟 2009. 9. 12. 00:46

중국 서안 비림 석대효경(石台孝经)

<비림박물관>

 

   석대효경정에는 '碑林(비림)'이라 새겨진 편액이 걸려있다.  청나라 장군  임칙서의 글씨다. 그런데 '비(碑)' 자의 획이 하나 부족하다. 임칙서는 1840년에 일어난 아편전쟁 당시 서안에 왔다가 광동성으로 가는 중에 비림의 현판을 남기면서 전쟁에서 승리하면 서안에 돌아와 점을 찍겠다고 했다. 그러나 아편전쟁은 영국의 승리로 끝나고 그는 남경조약이 체결된 뒤 신강에 가서 죽고 말았다. 그래서 한 획이 없는 상태로 남아있다고 한다.

 

   석대효경정 안에는 높이 3m에 달하는 거대한 '석대효경비(石台孝经)'가 있다. <효경>은 공자와 그의 제자 증자가 효에 대해 문답을 나눈 것이다. 큰 글자는 당 현종 때 이융기가 공자 효경의 원문을 예서체로 쓴 것이고, 작은 글씨는 현종이 해서체로 쓴 주석이다. 석대효경은 효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라 한다. 양귀비와의 열애로 역사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현종이지만 시와 서예, 음악에 능하고 미술애호가인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석대효경비문에는 피휘제도(避諱制度)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다. 현종이 그의 증조부인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이름 가운데 '民字'를 쓰면서 피휘하는 의미에서 '民字'의 마지막 획을 긋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조부인 고종 이치(李治)의 이름 가운데 '治字'를 쓰면서 역시 피휘하는 의미에서 '治字'의 마지막 획을 긋지 않았다. 석대효경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石台孝经> 刻于唐天宝四年(公元745年), 由唐玄宗李隆基作序, 注釋井书写. <孝经>是孔子的學生曾參记述他与孔子的问答之辭, 主要內容是讲孝, 悌之道. <石台孝经>碑身为四石合成, 上有浮雕云纹的碑冠, 下有绕刻饰纹的三层石台, 造型庄重端美. 此碑于北宋元祐二年(公元1087年) 移存現址, 距今已有九百余年, 是碑林中最早的展品.

 

   석대효경은 당나라 천보4년(서기 745년)에 각자하였다. 당현종 이융기가 글을 서문을 쓰고, 주석을 달고, 글을 썼다. 효경은 공자의 제자인 증삼이 공자와의 문답을 기술한 것이다. 주요내용은 효에 관한 것과 공경의 도리에 관한 것을 다루고 있다. 석대효경비는 4장의 돌을 합쳐서 만들었다. 비머리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진 비관이 있고, 아래에는 조각장식을 두른 3층석대가 있다. 조형이 장중하고 아름다움이 끝간데 없다. 이 비는 북송 원우2년(1087년)에 현재의 장소로 옮겨왔으니 이미 900여년이 되었다. 비림에 있는 가장 이른 시기의 전시품이다.

 

▲석대효경정

 

▲석대효경비

 

▲석대효경비

 

▲석대효경비

 

전액(篆額)

 

<大唐開元天寶聖文神武皇帝注孝經臺>

 

▲석대의 조각

 

▲피휘결획(避諱劃)-'民'자의 마지막 획을 긋지 않았다.

 

▲피휘결획(避諱劃)-'治'자의 마지막 획을 긋지 않았다.

 

 

 

<2009.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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