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향교
향교는 존현.육영의 현장이다. 상주는 고도요 웅주였던 만큼 향교 설치가 일찍부터 있었을 것이나 그 창건 년대는 상고할 수 없다. 1426년(세종 8)에 판목 조치(曺致)가 남루를 세우고 1485년(성종 15)에는 목사 강구손(姜龜孫)이 성전과 재루를 중창하였음은 향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임란(1592)에 완전 소실된 것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정면은 퇴간, 측면은 벽체로 막았다. 중수를 거듭하였다. 상주향교는 경주향교와 더불어 대설위 향교로서, 1966년에 우리 나라 18현, 송나라 2현의 위패를 추존하였다. 대성지성 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 공자) 의 위패를 전면에 남향으로 사성 위패를 전면 양쪽으로 하여 25위의 위패를 모시었다.
배치는 산자락의 경사지를 3단으로 정지한 후 맨 앞쪽부터 외삼문과 과정적 공간, 강학공간, 제향공간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외삼문-명륜당(강학 공간)-내삼문-대성전이 일축선을 이루고, 고직사는 동재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강학공간은 명륜당(明倫堂)을 앞에 두고 양재(동, 서재)를 뒤쪽에 둔 전당후재형(前堂後齋形)또는 전학후묘형(前學後廟形)으로 구성하고, 제향(祭享) 공간은 양무(동, 서무)를 앞에 두고 대성전을 높게 쌓은 기단 위에 놓아 그 위상을 높게 하였다.
이 향교는, 1949년에는 상주고등공민학교의 교실로, 1961년에는 명륜당을 남산중학교 교실로 사용한 적도 있다. 현재, 이 곳에는 '향안(鄕案)'과 '향약절목(鄕約節目)' 등의 사료를 보관하고 있다. 경상도라는 이름이 경주와 상주에서 유래했듯이, 경주와 상주 향교는 경상도를 대표하는 대규모 향교다. 지금으로 말해서 경주는 국립 부산대학교, 상주는 경북대학교 정도의 지위였다.
경역을 두 단의 평지로 나누어 아랫단에는 명륜당과 동서재를, 윗단에는 대성전과 동서무를 배치했다. 5칸 대성전과 10칸씩의 동서무는 아직도 그 규모와 위풍을 자랑하고 있지만, 명륜당과 동서재는 해방 전후에 없어졌다. 현재의 동서재는 최근에 복원한 것이고, 남문(외삼문)은 상주읍내에 있던 태평루(太平樓)를 이건 개조한 것이다.
남문을 이건할 때 누밑의 기둥들을 잘라버려 지금은 반2층 정도의 어정쩡한 누각형 건물이 되었지만 최근에 보수하여 누하진입이 가능하다. 원래의 장소와는 지형적 조건이 맞지 않고, 그다지 치밀하게 고려하지 않은 채 개조한 듯하다. 이 건물은 선산향교 청아루의 축소판이다. 전면 5칸의 누마루에 양 끝 뒤쪽으로 2칸씩의 온돌방을 돌출시켰다. 청아루에 비해 길이는 두칸 줄었지만 앞뒤폭은 두칸 늘었다. 날개채의 온돌방은 역시 지면에 붙은 단층으로 처리했고, 누각부분은 고상형으로 처리한 건물이다. 비록 이건하면서 높이가 변조되고 다른 건물과 연관성도 없어졌지만, 상주에서는 2층 집의 구성법이 향교 뿐 아니라 일반 관아건물에서도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다는 유력한 증거가 된다.
▲남문
▲남문
▲명륜당
▲명륜당 편액
▲내삼문
▲내삼문
▲대성전
▲대성전
▲대성전
▲대성전
▲대성전
▲대성전 편액
▲동무
▲서무
▲대성전 내부
▲공자 위패
▲공자 위패
<2009.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