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오작당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던 후에 이조참판에 추증된 검간 조정(趙靖, 1555∼1636) 선생이 지은 집이다. 선조 34년(1601)에 양진당 부근에 처음 지었다가 현종 2년(1661)에 지금 자리로 옮겨 지었다. 원래는 내사(內舍)와 외사(外舍)를 합하여 모두 40여 칸 건물이었으나, 정조 5년(1781) 공사 때 부분적으로 철거하여 현재는 안채, 사랑채, 가묘가 남아있다. 안채는 겹집으로 본래는 좌우 익사가 있었으나 없어졌다. 기둥에 고식(古式)의 모접이가 되어있고, 보아지와 장혀받침에 파련각(波蓮刻)이 있으며 부엌의 격자창 판문 등이 모두 고식을 간직하고 있다. 건축물의 일부 수법이 옛 양식을 간직하고 있고 인근 양진당보다 오래된 건물로 추정되어 주목받고 있다.
이 집의 안채는 一자형이지만 지붕은 工자형으로 양 날개채를 잘라낸 듯한 모습이다. 원래는 양진당과 같이 ㄷ자 집이었는데 이건중수하면서 날개채를 잘랐을 것으로 추정한다. 평면은 양진당과 같이 겹집이며 높은 기단 위에 위치하여 부엌 위에는 2층 수납공간이 마련되었다. 정면을 누마루로 처리하지 않았을 뿐이지 많은 면에서 양진당과 유사한 구성이다. 양진당보다 앞서 세워졌던 작은 규모로 양진당의 원형이 되는 주택으로 평가된다. 한 자정도의 두터운 기둥과 부재들이 오래된 집의 품격을 보여주며, 역시 모접이 기둥을 사용하여 날렵하게 보이는 등 양진당의 디테일과도 상통하는 솜씨이다.
▲오작당 대문
▲사랑채
▲오작당 편액
▲구당 편액
▲오작당
▲오작당
▲오작당
▲오작당 서가래
▲오작당 서까래
▲오작당 서까래
<2009.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