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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산책 - 경주 옥산마을 독락당

蔥叟 2009. 6. 5. 07:53

양동마을 산책 - 경주 옥산마을 독락당

   

   회재 이언적이 40세가 되던 해에 당시 조정의 실력자였던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고향으로 낙향한다. 그리고 안강의 자옥산 계곡에 독락당을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이곳에는 본래 그의 부친인 이번이 세웠던 정자가 있었으며, 소실인 석씨부인이 시집오면서 지은 안채와 행랑채가 있었다. 회재는 사랑채를 신축하여 독락당이라 이름하고 부친의 정자를 고쳐서 계정이라 하였다.

 

   독락당은 긴 계곡의 중간에 있는데 회재는 주변의 산봉우리에 각각 도덕산, 무학산, 화개산 그리고 자옥산이란 이름을 붙이고, 계곡의 바위에도 관어대, 영귀대, 탁영대, 징심대 그리고 세심대란 이름을 붙였는데 이들이 이른바 4산5대이다. 4산5대로 구성된 계곡의 이름을 자계라 하고, 자신은 자계옹이라 자처하였다. 4산5대는 회재의 독락을 위한 원림이 된것이다.

 

   독락당은 외부에 대하여 폐쇄적이고 은둔적이다. 마치 땅속으로 숨언 듯한 분위기로 은둔시절 회재의 심정과 같이 은둔을 위한 건축공간처럼 보인다. 4산5대로 둘러싸인 자계 옆에 낮은 지대에 집터를 잡고, 건물의 기단도 낮추고, 마루도, 지붕도 낮게 만들었다. 앞쪽에는 하인들의 거처인 공수간을 짓고, 위쪽에는 인공으로 숲을 조성하여 독락당은 외부시선으로 부터 차단되어 있다.

 

   독락당 건축은 안채와 사랑채(독락당), 별당(계정), 그리고 공수간과 숨방채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말기에 조성된 3칸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공수간이 있고 정면에 숨방채가 보인다. 숨방채의 오른쪽 끝부분에 다시 중문이 보이는데 이곳을 들어서면 정면이 막혀있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안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북쪽 벽면의 동쪽으로는 사랑채(독락당)로 들어가는 문이 있으나 항상 굳게 잠겨져 있다. 독락당(獨樂堂)은 이름이 뜻하는 대로 회재 이언적이 중종 27년(1532)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이곳에서 은거하면서 살던 집의 사랑채의 이름으로 옥산정사(玉山精舍)라고도 한다. ‘독락당’ 편액은 선조때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의 글씨이며 ‘옥산정사’ 편액은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독락당의 동편에는 계곡이 흐르고 그 사이에는 담장이 있어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담장의 일부를 뚫고 살창을 설치하여 계곡에 흐르는 시냇물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대문간의 동쪽으로는 공수간 뒷담장과 독락당의 앞담장 사이로 난 골목이 건물 내부의 복도와 같이 좁고 깊다. 이 골목의 끝에는 자계가 흐른다. 이곳에서 계정을 바라볼 수 있다. 독락당의 정면은 물론 대문간이 있는 남쪽이다. 그러나 그 의례적 정면은 은폐적이고 무표정하다. 그러나 계곡쪽 측면은 절벽에 다리를 걸친 정자와, 긴 담장과 그 사이에 뚫려 있는 출입문과 살창이 어울어져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한다. 계정의 형태는 계곡쪽을 향하여 개방적이다. 독락당의 건축적 정면은 바로 동쪽의 계곡이다. 회재가 이 집을 지은 목적이 인간사회와는 절연하고 자연과 벗하기 위함이었다. 건축적 정면이 자연을 향해 열려 있다는 것은 이 집이 자연 속으로 들어가는 입구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독락당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별당으로 지어진 계정(溪亭)일 것이다. 계정은 방 한칸과 마루 두칸에다 계곡 쪽으로 쪽마루를 내고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른 간단한 구조이다. 그러나 계정은 계곡의 물과 바위, 푸른 숲과 이어지는 자연 속의 공간이다. 1688년 계정에 올랐던 우담 정시한은 그의 기행문집인 ‘산중일기’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정자는 솔숲 사이 너럭바위 위에 있는데 고요하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빼어나 거의 티끌 세상에 있지 않은 듯하다. 정자에 올라 난간에 의지하여 계곡을 바라보니 못물은 맑고 깊으며 소나무, 대나무가 주위를 감쌌다. 관어대(觀魚臺), 영귀대(詠歸臺) 등은 평평하고 널찍하며 반듯반듯 층을 이루어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졌지만 마치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 집과 방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 계곡과 산에 잘 어울린다."

 

                                                                                                                      <정시한 산중일기>

 

   오른쪽 벽에는 ‘계정’ 편액이 붙어 있는데 한석봉의 글씨이다. 계정의 한쪽 작은 방 위에는 ‘양진암’(養眞菴)이라고 쓴 커다란 편액이 걸려 있는데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양진암은 이름 그대로 마치 암자와 같이 쓰인 곳이라고 한다. 회재는 어린 시절에 여기서 글을 읽었고, 낙향하여 은둔하던 시절에는 정혜사의 승려와 함께 교류하며 학문과 사상을 나누던 곳이었다고 한다.   

 

▲독락당의 정면

 

▲솟을대문

 

▲솟을대문

 

▲숨방채

  

▲대문간

 

▲돌담길

 

▲돌담길

 

▲독락당 계곡면

  

▲살창과 계정

 

▲계정

 

▲계정

 

▲사랑채(독락당)

 

▲살창

 

▲주엽나무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징심대

 

▲세심대

 

▲용추

 

 

 

                                                                             <2009.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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