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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마을 산책 - 경주 옥산마을 옥산서원

蔥叟 2009. 6. 6. 07:01

양동마을 산책 - 경주 옥산마을 옥산서원

 

   옥산서원은 동방5현으로 받들어진 회재 이언적을 배향한 서원이다. 회재가 죽은 지 20년 후인 1572년, 독락당 인근 지금의 자리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자 그의 후학(後學)들이 세운 서원이다. 옥산서원이라는 이름은 서원이 자리한 산의 이름인 자옥산(紫玉山)에서 따온 것으로 1574년 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선조로부터 하사 받은 사액서원이다. 옥산서원은 역락문과 무변루, 동서양재, 구인당, 내삼문, 그리고 체인묘가 모두 중심축과 좌우의 대칭을 이루는 구조로 된 규범성이 강한 배치를 하고 있어 서원의 일반적 형태를 공부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서원의 정문은 외삼문(外三門)인 역락문(亦樂門)인데, 그 이름은 『논어』의 학이조에 나오는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有朋自遠訪來 不亦樂乎)」에서 따온 것이다. 역락문을 들어서면 앞면 7칸 옆면 2칸의 2층 누각이 있는데 편액에 적힌 누각의 이름은 무변루(無邊樓)이다. 편액의 글씨는 석봉 한호(石峯 韓濠)가 썼다고 하는데 그뜻은 끝이 없다는 의미이다. 무변루는 본래 納淸樓라 하였다가, 훗날 노수신이 주돈이의 '風月無邊'에서 취하여 무변루라고 고쳤다고 한다.

 

   누각을 지나면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고 있는데 동재의 이름은 민구재(敏求齋)이고 서제는 암수재(闇修齋)이다. 민구재의 '敏求'는 <논어>의 "인을 구함에 민첩해야 한다"(好古敏以求之)는 뜻에서 취한 것이고, 암수재의 '闇修'는 주자의 "가만히 고요히 자수한다"(闇然自修)는 뜻에서 취한 것이다. '闇'은 <중용>의 "군자의 도는 은은하나 날로 드러난다."(君子之道 闇然而日章)는 뜻을 가지고 있다.

 

   정면으로 보이는 팔작지붕 건물이 강당인 구인당(求仁堂)이다. 구인당의 '求仁'은 성현의 학문이 다만 仁을 구(求)하는데 있다는 회재 성리학의 핵심을 나타내는 사상으로, 논어의 "인을 구하여 인을 얻었다."(求仁而得仁)에서 취한 것이다. 편액의 글씨는 역시 석봉 한호가 쓴 것이다. 구인당의 정면에 걸려있는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 가기 직전 54세때에 쓴 것이라고 한다. 추사의 편액 뒤쪽에는 또하나의 ‘옥산서원’ 편액이 있는데 이것은 사액당시에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가 선조의 명을 받아 쓴 글씨를 새긴 것이라고 한다. 구인당의 좌측 협실인 양진재의 '兩進'은 '明'과 '誠'의 양진을 말하는 것으로, 명은 도덕을 밝힌다는 뜻이고, 성은 의지를 성실하게 한다는 뜻이다. 우측협실인 해립재의 '偕立'은 '敬義偕立', 즉 경건한 마음가짐과 신의로써 사물에 대처한다는 뜻에서 취한 것이다. 경의와 명성은 성리학의 으뜸되는 뜻이다.

 

   구인당을 돌아가면 사당의 담장 밖 왼쪽에 회재의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577년에 세운 것으로, 글은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이 짓고 글씨는 아계 이산해가 썼다. 원래 회재의 무덤 앞에 있던 것을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사당은 내삼문인 체인문을 통하여 들어갈 수 있다. 사당은 체인묘이고 안에는 회재 이언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체인묘의 '體仁'은 어질고 착한 일을 실천에 옮긴다는 말로서, 성리학에서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옥산서원에는 1512년 경주부에서 간행하였고 회재가 1513년에 하사 받은 삼국사기(보물 525호) 완질과 우리 나라 역대 명필들의 금석문을 탁본한 해동명적(海東名蹟)은 보물 526호로서 신라의 김생과 최치원을 비롯하여 고려시대 3인 조선시대 12인의 글씨가 남아있다. 그리고 회재의 친필 저술 5종 13책(보물 586호)과 회재가 생원시험에서 합격할 당시인 중종8년에 실시한 사마시(司馬試)의 합격자 명단인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보물 524호)이 보관되어 있으나 일반에 공개는 하지 않는다.

 

   옥산서원은 자계계곡에서 가장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았다. 높이 3m의 폭포가 떨어지는 용소와 세심대 등이 있어 수양처로 더 없이 아름답고 운치있는 장소이다. 하지만 옥산서원 안에서는 바깥의 절경을 전혀 볼 수가 없다. 옥산서원의 역락문을 들어서는 순간 자연에서 느낀 감동의 여운은 급격히 사라지고 완벽하게 인공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강당 마당은 사방을 꽉 둘러싼 건물들만이 바라다 보인다. 안동의 병산서원이 앞산과 낙동강의 경관을 서원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옥산서원은 철저하게 닫힌 공간이다.  

 

   강당 마당은 비슷한 길이의 구인당과 무변루 사이에 동서 양재가 끼워져 정방형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다. 건물 사이의 모퉁이 부분도 서로 겹쳐져 마당의 모퉁이는 닫혀졌다. 무변루는 바깥 벽을 모두 막아서 외부로의 확장을 차단하고 있다. 마당은 구심점이고 내부지향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무변루는 총 7칸이지만 마당에서는 5칸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즉 5칸의 몸체에다 양끝 한칸씩을 외부를 향해 개방했다. 한 동의 건물에 서로 다른 두 성격의 공간이 결합된 형식이다. 바깥에서는 7칸, 안에서는 5칸으로 인식되는 묘한 건물이다.

 

   옥산서원은 철저하게 중심 구성축을 따라 배열되고 대칭적이다. 문집판각을 제외하고는 모든 거물들이 직각과 평행으로 만나고 있다. 또 옥산서원의 터닦기는 두단으로 이루어 졌다. 아랫단은 강당영역과 관리사 영역이 남북으로 놓이고, 윗단 영역은 사당이 중심을 이루면서 좌우로 장경각과 비각이 배치되었다. 아랫단이 생활영역이라면 윗단은 상징과 보물들의 영역이다. 서원의 재산 가운데 가장 귀중한 것이 서책과 판본이다. 사당 북쪽의 비각은 회재의 신도비를 위한 건물이다. 

 

 

▲옥산서원

 

▲역락문

 

▲역락문 편액

  

▲무변루

  

▲무변루

 

▲무변루

 

▲무변루

 

▲무변루

 

▲무변루 편액(한석봉 서) 

 

▲마당

 

▲구인당

 

▲구인당

 

▲구인당

 

▲구인당 마루

 

▲옥산서원 편액

 

▲옥산서원 편액(추사 김정희서)

 

▲옥산서원 편액(아개 이산해 서)

 

▲구인당 편액(한석봉 서)

 

▲해립재

 

▲해립재 편액

 

▲양진재 편액

 

▲암수재

 

▲암수재

 

▲암수재

 

▲민구재

 

▲민구재

 

▲민구재

 

▲정료대

 

▲정료대 상대석

 

▲비각

 

▲체인묘

 

▲체인묘

 

▲경각

 

 

 

                                                                               <2009.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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