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전염불사터 삼층석탑
동남산(東南山)에서 칠불암(七佛庵)을 오르는 등산로 입구가 바로 봉구곡(蓬丘谷)이다. 봉구곡 입구에 지금은 무너져 있던 2기의 탑지가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염불사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서탑은 제자리를 지키며 무너져 있었고, 동탑은 1963년에 불국사역 앞으로 이건·복원(移建·復元)되어 전해져 오고 있었다. 이 두기의 석탑이 지난 연말 복원되었다. 그동안 지표상에서 확인된 서탑 부재로는 하층 기단면석 2매, 하층기단갑석 1매, 상층 기단면석 3매, 1·2·3층 탑신석, 2·3층 옥개석이 남아있었다. 각 부재의 크기는 동탑과 비슷하여 같은 크기의 쌍탑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염불사터 전경
▲전염불사터 전경
▲전염불사터 동서삼층석탑
동탑에서는 알 수 없었던 사리공(舍利孔)의 위치가 3층 탑신석(塔身石)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는데, 방형으로서 너비 18cm, 깊이 10.5cm 이다. 복원된 높이는 545cm로 동탑에서 노반을 제외한 높이가 563cm이므로 거의 동형의 탑이었다. 동탑터에는 옥개석 2매와 하층 기단면석(基壇面石) 1매만이 남아있었다. 나머지 부재들은 모두 불국사역 앞 광장으로 옮겨져 복원되었으나, 복원 당시 1층 옥개석(屋蓋石)의 파손 정도가 심하여 부근의 傳이거사지 탑부재(移車寺址 塔部材)로 대신하였고, 원래의 1층 옥개석은 현재 탑 뒤에 묻었다고 하는데 현재 여러 동강이 나서 복원 때에 사용되지 못하고 새로운 부재로 다듬어 올렸다.
▲동삼층석탑
▲동삼층석탑
복원된 탑의 규모를 보면, 이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塔身部)가 있고, 양식적인 면에 있어서도 상·하층 기단면석에 탱주(撑柱) 각 2柱, 옥개석은 옥개받침 5단, 탑신받침 2단으로 전형적인 8세기의 탑이다. 특히 하층 기단면석은 8매의 돌로 결구되었는데, 동측면의 탱주 1柱가 별석(別石)으로 만들어졌다. 탱주(撑柱)가 별석으로 구성되는 탑은 국사곡(國師谷) 제4사지 삼층석탑과 포석계(鮑石溪) 포석곡 제7사지 삼층석탑이 있는데, 현재 여기서는 복원과정 중에 그렇게 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상층기단면석 역시 8매의 돌로 결구되었는데, 그 양식은 하층 기단면석과 같다. 그 위의 상층 기단갑석에는 각형(角形) 2단으로 탑신받침이 표현되어 있다. 탑신석은 양우주(隅柱)가 있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기 이후의 탑으로 추정된다. 복원공사 과정에서 동탑의 부재만이 아니라 서탑의 부재도 구정동으로 이전했던 것으로 밝혀졌다는게 윤만걸 석공예 명장의 설명이다. 남리 절터는 삼국유사에 나오는 염불사터로 전해지고 있다.
▲동탑 탑신부
▲동탑 기단부
남산의 동쪽 기슭에 피리촌(避里村)이라는 마을이 있고 마을에는 절이 있는데 마을 이름을 따서 피리사라고 이름지었다. 절에는 범상찮은 중이 있어 성명을 말하지 아니하고 언제나 염불을 외워 그 소리가 성중에까지 들려 360동리 17만 호 치고 안 들리는 데가 없었다. 염불 소리는 높고 낮음이 없이 그냥 옥과 같은 소리가 한결같았다. 이로써 이상하게들 여겨 누구나 정성껏 공경하고 모드가 염불 스님(念佛師)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가 죽은 후에 흙으로 그의 형상을 빚어 민장사(敏藏寺)가운데 모시고, 그가 본래 살던 피리사는 염불사(念佛寺)로 이름을 고쳤다. 절 옆에 또 절이 있어 이름을 양피사(讓避寺)라고 하였으니 마을 이름에 따라 이름짓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 염불사(念佛師)조>
▲동탑 탑신부
▲동탑 기단부
▲서삼층석탑
염불사터는 발굴조사를 통하여 동·서탑 및 회랑의 구조를 파악하였다. 동탑지는 남북 12m, 동서 10.8m, 두께 약 1.8m의 반구형 탑기초부를 견고하게 조성한 뒤 탑적심부가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회랑(廻廊)의 경우 80㎝ 이상의 적심하부가 확인되었다. 지금까지의 탑연구는 주로 외형을 기준으로 이루어졌으나, 남리사지에서 정밀조사된 탑지의 하부구조는 통일신라시대 탑조성과정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서삼층석탑
▲서탑 탑신부
▲서탑 기단부
지금까지 전염불사터의 석탑재들을 바라보면 유적이 무너지고 흩어진 모습이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석탑뿐만 아니라 금당터에는 이미 호화로운 전원주택이 여러 체 들어서 있는데 발굴도 하지 않은 채 집을 지었다고 한다. 남산을 사적으로 지정할 때 산자락까지만 포함시켰고 주변 지역을 사적에서 제외하였으며 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 복원된염불사 복원어 동남산을 찾는 답사객들로 부터 많은 사랑을 받지 않을까? 염불소리가 들리던 옛 사찰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복원되지 못한 동탑 지붕돌
▲복원되지 못한 동탑 지붕돌
<2009. 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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