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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탑골 부처바위 동면

蔥叟 2008. 11. 27. 08:10

경주 남산 탑골 부처바위 동면

  

   동면에는 불상, 보살상, 승상, 비천상, 가릉빈가, 연화 등이 조각되었고, 좌측 벽에 승상 2구와 신장상 및 보리수 2그루 등 가장 많은 상들이 조각되었다. 가운데 여래좌상이 앉아있고 왼쪽에 협시보살이 여래를 향하여 앉아있다. 아랫쪽에는 네모난 자리를 갈고 앉아 여래를 향하여 향로를 받쳐든 공양승려상이 있다. 여래좌상과 보살좌상 주위로는 일곱 비천상이 천의를 길게 휘날리면서 내려오고 있다. 여래의 광배 오른쪽에는 가릉빈가상이 보인다.

 

   여래좌상은 둥근 얼굴에 낮은 육계가 있고 눈, 코, 입 등이 뚜렷하다. 눈썹은 반원형에 가깝고 눈은 하현달과 같다. 동공은 보이지 않고 약간 부은 듯하다. 코는 길고 끝이 거의 삼각형을 이루고 입은 작다. 어깨는 둥글고 부드러우먀 왜소한 편이고 법의는 통견으로 배앞에서 두 손을 감싸 흐르고 있다. 승각기의 깃이 가슴 위로 상당히 올라가 표현되고 있어 좀 답답하다. 두광은 원형으로 이중의 연꽃으로 장식되고, 두광의 외곽은 연주문(連珠紋)으로 둘러져 있다. 대좌는 연화좌로서 蓮辨이 넙적하여 소략하다 연화좌 밑으로 법의의 주름이 좌우로 원호를 그리며 나타나고 있다.

 

   왼쪽의 보살상은 여래보다 작은 모습인데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양쪽 어깨에 천의가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본존을 향하였고 두 손은 합장을 하고 있다. 코는 매부리코이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는데 귀끝이 外返되고 있다. 어깨에는 천의가 걸쳐 있는데, 양끝이 외반되고 있다. 두광과 대좌는 본존불의 것과 같은 모양이다. 특이한 것은 일반적으로 여래 독존 또는 좌우협시보살과 함께 삼존불로 표현하는데 비하여 여기서는 여래 한분에 보살 한분으로 이존불이라는 점이다. 괴산 원풍리의 이불병좌상은 여래 두분을 함께 모신 경우이다.

 

   공양승려상은 본존을 향하여 향로를 들고 무릎을 꿇고 앉은 측면관이다. 얼굴은 갸름하고 코는 매부리코이다. 밑에는 방석을 깔고 앉아있다. 승려상은 한쪽 무릎은 꿇고 다른 한쪽은 세운 일반적으로 '윤왕좌(輪王坐)' 라고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그런데 일반적인 불상관련 서적에서는 '궤좌상(坐像)'으로 부르고 있다. 서남산 선각아미타삼존상의 협시보살의 자세이고, 월정사 8각9층석탑 앞의 보물로 지정된 공양보살상, 강릉 신복사지 3층석탑 앞의 공양보살상 등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주로 고려시대에 유행한 형식이다. 불설미륵하생불경(佛說彌勒下生成佛經)에 '아난이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하여 부처님께 나아가 여쭙거나 공양을 올릴 때 옷 매무새를 고치고 오른쪽 어깨를 벗어내리고 궤좌하고 합장한다.

 

   비천은 모두 본존을 향하여 천의를 날리고 있다. 이들은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있거나, 연봉을 지물로 들고 있다. 머리에는 한결같이 결발을 하고 있는데, 마치 리본을 꽂은 것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가슴까지만 표현하고 있는데 이러한 것은 비약의 표현을 강조하기 위한 하지의 묘사를 생략한 것으로 보인다. 비천들은 본존을 향하고 있는 측면관인데 최상단의 비천만은 정면관을 하고 두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비천은 모두 꽃을 뿌리며 혹은 꽃접시를 들고 혹은 합장하고 부처님을 향하여 찬미하는 모습들인데, 그 옷자락들이 하늘 위로 길게 나부끼고 있어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비천 사이에는 가릉빈가로 보이는 조각도 보인다.

 

   동면의 좌측에는 두 그루의 보리수 밑에서 좌선하는 승려상이 있다. 민머리에 얼굴은 타원형이고 납의는 통견으로 양손을 감싸 흘러내리고 있다. 좌우로 보리수로 보이는 두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잎들을 짤막짤막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승려상 옆의 바위에 또 한 승려상이 있는데 마멸로 인하여 얼굴의 세부는 알 수 없고 윤곽만을  알 수 있다. 납의는 통견으로 역시 두 손을 감싸 흘러내리고 있다. 이 바위의 남족면에 신장상이 있다. 얼굴은 좌측으로 돌리고 있으며, 허리는 우측으로 제치고 있다. 양팔은 좌우로 벌리고 오른손에는 삼지창을 들고 있다. 갑옷을 입고 있으며 입구를 바라보고 있다.  신장상이 있는 이곳이 입구로 추측된다.

 

   부처바위의 寺名과 관련하여 문명대는 이곳에서 발견된 '神印寺'명 기와를 근거로 신인사라고 추정하였다. 하지만 명문기와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신빙성이 떨어진다. 최근 향토사학자 최민희는 삼국유사의 기록에 근거하여 천은사로 추정하였다.

 

   

王初卽位, 置南山長倉, 長五十步, 廣十五步貯米穀兵器, 是爲右倉, 天恩寺西北山上, 是爲左倉.

 

(문무)왕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남산에 장창을 설치하였는데 길이가 50보였으며 넓이가 15보로서, 이 곳에다 미곡과 병기를 저장하였다. 이것이 우창이며, 또 천은사 서북쪽 산위에도 장창이 있으니, 이것은 좌창이라 한다.

 

<삼국유사 문호왕법민(文虎王法敏) 조>

 

   지금까 장창을 중심으로 서쪽의 것은 좌창으로, 동쪽의 것을 우창으로 생각하였다. 최민희는 월성에서 바라보았을 때 동쪽의 것이 좌창, 서쪽의 것을 우창으로 본다면 좌창이 천은사의 서북쪽에 있다하였으므로 역으로 생각하면 천은사는 좌창의 동북쪽이 되므로 탑골부처바위는 천은사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남산의 서북쪽으로 추정되는 천은사터에서는 서북쪽에 산이 없다.

 

▲동면 1 실측도

 

  ▲동면 2 실측도

 

 ▲동면 1 탁본

 

▲동면 2 탁본

 

▲동면 전경

 

▲동면 전경

 

▲여래좌상

 

▲보살좌상

 

▲공양승려상

 

 ▲정면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비천상

 

 ▲가릉빈가

 

 ▲수하승려상

 

 ▲승려상

 

 ▲신장상

 

▲좌창과 천은사 그리고 탑골(지도 출처 : 경주남산연구소)

지도에서 탑골 서북쪽에 좌창(동창)이 있다. 천은사터 서북쪽에는 산이 없다.

  

 

 

<2008.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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