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왕릉 가는 길 - 경주 전진지왕릉(傳眞智王陵)
선도산의 동남쪽 기슭 전진흥왕릉 바로 아래쪽에 신라 제25대 진지왕릉이라고 전해지는 고분이 있다. 밑둘레 53m, 높이 3m의 봉분을 둥글게 쌓아올린 보통크기의 무덤이다. 그런데 이 고분 역시 전진흥왕릉과 마찬가지로 규모에 있어서나 위치로 보나 전혀 사실과 다르게 지정된 고분이다. 현재의 능은 삼국사기에 장지로 기록된 '永敬寺北峰'과 동남쪽 바로 아래에 있는 서악동 삼층석탑을 근거로 역시 조선 영조 6년(1730)에 경구김씨 문중에서 지정한 것이다. 하지만 영경사터로 추정한 서악동 삼층석탑을 중심으로 하는 절터는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진지왕릉이 조영되는 6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이 아니라 9세기 후반의 사찰로 판단된다.
24대 진지왕의 능과 관련하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四年, 秋七月十七日, 王薨. 諡曰<眞智>, 葬于<永敬寺>北.
4년 가을 7월 17일, 왕이 별세하였다. 시호를 진지라 하고 영경사 북쪽에 장사지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지왕전>
○丙申立理四年. 陵在哀公寺北.
병신년에 즉위하여 치세는 4년이다. 능은 애공사 북쪽에 있다.
<삼국유사 왕력>
29대 무열왕(葬永敬寺北)의 능은 『삼국사기』에는 영경사의 북쪽(葬永敬寺北)에 『삼국유사』에는 애공사의 동쪽(葬於哀公寺東有碑)에 있다고 각각 표시하였다. 그런데 무열왕릉의 위치는 확실하므로 진지왕릉은 무열왕릉과 동일 영역에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무열왕릉과 같은 능역에 있는 서악동 고분군 안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
한편 1963년 사적지 지정당시에 전진지왕릉과 전문성왕릉의 지번이 서악동 92-1번지로 같았기 때문에 '진지문성왕릉'으로 문화재관리국이 동시에 지정하였다. 그후 학계에서 조차도 진지왕릉과 문성왕릉이 합장된 능으로 판단하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문성왕릉은 삼국사기에만 공작지에 장사지낸 것으로 되어 있을 뿐 두 왕이 합장되었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25대왕과 46대 왕을 합장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경주김씨 문중에서는 이를 바로 잡아달라는 진정서를 청와대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경주 김씨 문중에서 문성왕릉과 진지왕릉을 구분하여 따로 지정하고 있다. 또한 묘비를 문중에서 자체 제작하여 세우기까지 하였는데 지금의 묘비에는 대한민국이라는 글자가 없는 상태로 남아있다.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전진지왕릉
<2008.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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