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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비슬산 유가사(瑜伽寺)

蔥叟 2008. 10. 16. 08:17

달성 비슬산 유가사(瑜伽寺)

 

   비슬산의 정상인 대견봉 아랫 자락에 아늑히 들어앉은 산사로 827년(흥덕왕 1년) 도성국사(道成 國師)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의하면 도성국사는 시공을 초월하는 놀라운 도력(道力)을 지녔다고 하며, 비슬산의 바위 모습이 마치 아름다운 구슬과 부처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여 절의 이름을 '유가사'라 했다고 한다. 

  

▲유가사 천왕문

 

▲산신각

 

▲유가사 전경

 

▲삼층석탑

 

   고려시대에는 유가종(瑜伽宗)의 총본산으로 3천 명의 승려가 머물 정도로 팔공산 동화사보다 더 큰 규모를 자랑했으나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 동화사의 말사(末寺) 신세가 되었다. 당우(堂宇)로는 대웅전과 백화당, 취적루, 용화전, 나한전, 산령각 등의 약 10동의 불전이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는 지방문화재인 용화전 석조여래좌상이 있고, 비지정문화재로 조선 후기에 그려진 16나한도, 부근 절터에서 가져온 고려시대 5층석탑, 유가사의 기나긴 역사가 담겨진 거대한 부도밭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 후기에 그려진 괘불(掛佛)이 있는데 매우 영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여 가뭄이나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을 때, 괘불을 법당에 모셔두고 기도를 드리면 가뭄 등의 어려움이 해소되었다고 하며, 예전에는 비슬산에 호랑이와 늑대 등이 많아 사람과 가축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고 하는데. 괘불을 대웅전 앞에 걸고 제사를 지내니 짐승들이 마치 괘불의 위용에 놀란 듯, 거의 얼씬거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대웅전

 

▲대웅전 계단

 

▲대웅전 괘불지주

  

  다리를 넘으면 속세와 부처의 세계를 구분 짓는 기둥 2개의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비슬산의 오랜 명물인 암괴류 돌덩어리 서식지를 만나게 된다. 일주문을 지나 5분 정도 오르면 유가사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유가사로 가는 길이 2갈래로 쪼개지는데 왼쪽 길은 해탈문을 거쳐 송림(松林)의 산길을 지나 천왕문으로 통하며 오른쪽은 콘크리트 도로로 유가사 경내의 동쪽으로 통한다. 얇은 2개의 기둥에 의지한 해탈문의 모습이 꼭 속세의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던지고 해탈에 경지에 이른 듯 홀가분해 보인다.

 

   해탈(解脫)을 꿈꾸며 해탈문을 들어서면 중년 신사처럼 멋드러진 송림길이 나온다. 소나무 사이로 펼쳐진 오솔길을 따라 2분 정도 가면 개성 만월대(滿月臺)의 옛 고려왕궁의 거대한 계단을 닮은 높다란 돌계단이 우리를 맞이한다. 촘촘히 들어선 계단을 오르면 정면으로 맞배지붕의 천왕문이 나온다. 천왕문은 부처님의 경호원인 사천왕(四天王)의 보금자리로 보통 '天王門' 현판이 걸려있으나 여기는 그냥 '瑜伽寺'라 쓰인 현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문 안에는 사천왕의 형상(形象) 대신 그들의 모습을 담은 벽화(壁畵) 4장이 있다. 

 

▲대웅전과 나한전

 

▲나한전

 

   천왕문에서 사천왕의 검문(?)을 받고 나오면 바로 '천방루'라는 황색 지붕의 누각과 마주친다. 지붕이 누래서 마치 자금성(紫禁城)의 건물을 보는 듯하며 유가사의 옛 영화를 꿈꾸는 상징적인 건물이지만 1층 부분은 가운데 통로를 제외하고 모두 벽으로 봉해버린 탓에 누(樓)의 이미지가 상당히 떨어진다. 천방루를 들어서면 대견봉을 든든한 뒷배경으로 삼은 유가사 경내가 유감없이 펼쳐진다.

 

   비슬산의 정상 대견봉(大見峰)이 조그마한 산사, 유가사의 든든한 뒷배경이 되어주고 있다. 조선시대 상당수의 절들은 예전 시대에 비해 절을 크게 꾸밀만한 여력이 부족했다. 그래서 몇몇 절들은 그 허전함을 채우려는 의도로 웅장한 산이 잘 보이는 곳에 절을 세우거나 혹은 이전했다고 한다. 

 

▲용화전과 산신각

 

▲용화전

 

▲용화전 석불

 

   유가사의 가람배치는 금당(대웅전) ~ 2탑 ~ 중문(천방루) 형태로 대웅전 앞에는 3층석탑 2기가 세워져 있다. 그 중 우측의 이 석탑은 원래 유가사에서 1리 정도 떨어진 원각사(圓覺寺)라는 옛 절터에 있던 것으로 절이 파괴되고 탑 또한 산산이 부셔진 채로 뒹굴고 있던 것을 1920년 유가사에서 그 탑재(塔材)를 수습하여 복원하였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복원이 잘되어 탑의 전체적인 비례도 알맞고 보물급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돌을 다듬은 솜씨가 정교하다. 탑의 상륜(相輪) 부분에는 찰주가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용화전 석불

 

▲용화전 석불대좌

 

▲용화전 석불 대좌 조각

 

   나한전과 산령각(山靈閣) 중간에 들어앉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촐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용화전은 보통 미륵불(彌勒佛)을 모시나 여기서는 유가사의 유일한 지정문화재인 석조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유가사에 유일한 지정문화재로 불상과 대좌(臺座)가 같은 돌(화강암)로 조성되어 서로 끈끈하게 붙어 있다.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얼굴 부분과 양 무릎을 시멘트로 땜방질 한 것을 빼면 대체로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다소 어벙벙해 보이는 그의 얼굴 주변으로 땜방질의 검은 흔적들이 불에 그을린 양 옥의 티처럼 남아 있다. 어깨는 꽤나 단련을 한 듯, 넓직하며 가슴 부분은 근육도 우람하여 매우 듬직해 보인다. 대좌에는 조그만 불상들이 조용히 들어앉아 합장인(合掌印)을 선보인다.

 

▲용화전 앞 비

 

▲부도

 

 

 

<2008.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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