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달구벌문화권

달성 용연사 석조계단(石造戒壇)

蔥叟 2008. 6. 7. 12:22

달성 용연사 석조계단(石造戒壇)

 

   부처님의 육신과 다름없는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 한다. 적멸보궁의 유래는 신라시대 자장율사께서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한 가피력으로 금란가사와 사리를 모시고 돌아와서 설악산의 봉정암, 영축산의 통도사, 태백산의 정암사, 오대산의 월정사, 사자산의 법흥사에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여 이를 5대 적멸보궁이라 한다.

 

   용연사의 적멸보궁은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스님이 임진왜란 때 왜적을 피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통도사에서 금강산으로 모셔가던 중 사리 1과를 용연사에 봉안하였다고 전한다. 〈건봉사석가치상립탑비 乾鳳寺釋迦齒相立塔碑〉에 의하면 사명대사가 왜구로부터 다시 찾은 통도사의 사리 일부를 이곳 석조계단에 봉안했다고 한다. 이 석조계단의 건립비에 "癸丑五月五日塔成高五尺五寸……"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1673년(현종 14)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이 통도사의 사리탑을 파손하자 사명대사가 왜적을 물리치고 사리를 안전하게 모셔서 금강산으로 가지고 가서 서산대사에게 어찌할 것인가를 물었다. 서산대사는 본래의 자리에 마땅히 되돌려 주어야 한다고 하여, 사리함 하나는 통도사에 다시 모시도록 했으나 만일을 위해서 다른 하나는 제자 선화에게 태백산 보현사에 모시도록 하였다. 그런데 그 때는 아직 영남지방이 안정되기 전이어서 미처 통도사에 봉안 사업을 시작하지 못하였고, 사명대사는 포로 송환 교섭을 위해 일본에 다녀온 뒤 곧 입적하자 그 사리는 치악산 각림사(覺林寺)에 남게 되었다. 얼마 후 그의 제자 청진이 이를 비슬산 용연사에 옮겨 모신 뒤 대중과 상의하여 탑을 세워 봉안하기로 하였다. 그러면서 본래의 봉안처인 통도사로 되돌려 모셔야 한다는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뜻을 받들어 사리 2과 중 1과는 통도사에 보내고, 1과만 이곳 용연사 북쪽 기슭에 봉안했다고 한다. 1673년에 완성되었으니 통도사 계단이 파헤쳐진 지 80여년만에 다시 봉안된 것이다.

 

<사바교주석가여래부도비명(娑婆敎主釋迦如來浮屠碑銘)>

 

   계단이란 부처의 사리를 모신 곳으로, 이곳에서 승려들이 계를 수여하는 의식을 행한다. 신성한 곳으로 금강계단이라고도 한다. 통상 앞쪽에 적멸보궁이라고 하는 전각을 설치하는데 불상을 봉안하지 않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이는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가 곧 예배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 석조계단은 널찍한 2중기단 위에 종 모양의 탑 몸돌을 올렸다. 아래층 기단의 각 모서리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여 사방을 수호하도록 하였다. 위층 각면에는 팔부신중상을 돋을새김하여 단조로움을 덜어주고 있다. 몸돌 위로는 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을 조각해 두었다. 1934년에는 계단 주위에 돌난간을 둘렀다.

 

   절 안에 있는 석가여래비에 석가모니의 사리를 모시고 계단을 쌓았는데 광해군 5년(1613)에 완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제작연대가 분명하여 당시 석조건축 연구의 귀한 자료가 된다.

 

▲금강게단

 

▲적멸보궁

 

▲적멸보궁

 

▲적멸보궁 옆 작은 건물

 

▲적멸보궁 옆 작은 건물

 

▲석조계단

 

▲석조계단

 

▲팔부신중

 

▲팔부신중

 

▲팔부신중

 

▲팔부신중

 

▲팔부신중

 

▲팔부신중

 

▲팔부신중

 

▲팔부신중

 

▲석등

 

▲석등 화사석

 

▲부도밭

 

▲부도밭

 

 

 

<2008. 5. 18>

22052

'◈한국문화순례◈ > 달구벌문화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구 이천동 고인돌  (0) 2008.07.21
대구 상인동 고인돌  (0) 2008.07.21
달성 비슬산 용연사(龍淵寺)  (0) 2008.06.06
달성 현풍 석빙고  (0) 2008.06.05
달성 비슬산(琵瑟山)  (0) 2008.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