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 6. 12:39ㆍ◈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신라 문무왕 장례길(9) - 경주 대종천(大鐘川)
문무왕 장례길을 따라 대종천이 흐른다. 대종천은 토함산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다 함월산 기림사에서 흘러 나오는 물줄기가 합쳐져 양북 들판을 가로질러 감은사터 앞을 지나 대왕암 동해구를 통하여 동해바다로 흘러드는 물줄기이다. 대왕암, 이견대, 감은사 등을 감싸 안고 이들 유적지를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증명하고 있는 대종천은 그 이름에 얽힌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대종천
*대종천
고려시대의 일이다. 고종 25년(1238) 몽고의 침략으로 경주 황룡사의 구층탑을 비롯한 문화재가 불타버릴 때였다. 황룡사에는 성덕대왕 신종의 4배나 되는 49만근이 넘는 대종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종은 삼기종(三奇鐘)의 하나인데 삼기종이란 황룡사 대종 외에도 에밀레종 또는 봉덕사종으로 알려진 성덕대왕신종, 그리고 효자 손순이 아이를 묻다가 얻은 석종(石鐘) 등 세 개의 종을 말한다. 그런데 이 종을 몽고군들이 탐내어 그들 나라로 가져가려 하였다. 뱃길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운반수단이던 시기였기에 토함산 너머에 있는 하천을 이용하여 동해구로 운반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문무왕의 화신인 호국용은 몽고병사들이 큰 종을 가져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배가 대종천에 뜨자 갑자기 폭풍우가 일어나 종을 실은 배가 침몰하면서 종도 그만 바다에 빠뜨렸다. 이 후 큰 종이 지나간 개천이라고 해서 대종천이라고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
*대종천
*대종천
하지만 이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몽고군은 유목민으로써 기마민족이었다. 말은 잘 탈 수 있지만 배를 탄다는 것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라시아 대륙을 그들의 말발굽아래 짓밟은 몽고군이지만 강화도로 천도하여 항쟁하는 고려군을 좁은 바다를 건너지 못하여 30년 동안이나 정복하지 못한 점이나 일본 정벌도 끝내 포기해야만 했던 사실이 잘 말해준다. 또한 비록 대종을 바닷길로 운반하기 위하여 해안까지 옮기더라도 험한 감포 길보다는 평탄한 울산길이 더 편리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몇 해 전에는 동해구에 빠진 대종을 찾느라 수중 작업을 벌이다 끝내 실패하였으며 바다에서 가끔 종소리가 들린다고 하는데 이것 또한 허무맹랑한 말일뿐이다. 종은 밖에서 쳐주어야만 울린다. 그런데 바닷물 속에 잠겨있는 종이 울려질 수는 없는 일이다. 일설에는 종소리의 주인공인 황룡사의 종이 아니라 감은사의 종으로 임진왜란 때 왜병들이 빠드린 것이라고도 한다.
*대종천
*대종천
그런데 각종 지리지를 통해 확인해 보면 대종천의 조선시대 까지의 명칭은 동해천(東海川)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경잡기에는 "속설에 '지금 절터 밭이랑사이에 묻혀있다.'라고 전한다."라고 기록되어있다. 대체로 1910년대 이후부터 대종천이라는 이름이 집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일제 때 동해라는 지명을 없애기 위해 대종천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한다.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대동여지도에는 대종천이란 지명 대신 동해천이라고 나와있으며, 조선시대 경주부 지도에는 양북면 소재지인 어일이라는 마을도 당시에는 동해, 또는 동해창(東海倉은 조선시대 세곡미, 즉 세금으로 바치는 쌀을 바닷길을 이용한 조운로의 임시조창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모아진 쌀이 남해와 서해를 거쳐 한강을 따라 서울의 경창으로 운반되었다)이라고 나와있다.
*대종천
*대종천
또한 동해 또는 동해구라는 지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고서적에도 나오며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바다를 '해가 뜨는 바다' 즉 동해라고 불렀고 이에 따라 천년고도의 경주지역에서 제일 가깝게 동해와 맞닿아 있는 이 지역을 '동해', '동해구'라고 불렀다. 그러나 일제가 동해를 자신들의 바다인 것처럼 '일본해'로 만들기 위해 각종 옛 기록에 나오는 동해라는 명칭을 없애고 그때 동해천도 대종천으로 이름을 바꿨고 대종천이야기 역시 이때 널리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를 1910년 강제합병하고 전국팔도 행정구역을 대대적으로 바꾸면서 각종 지명과 명칭을 손 본 사실이 이를 증거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야만 그들이 강제로 병합한 우리의 바다를 합법적으로 자신들의 고유 영해처럼 할 수 있는 구실을 만들 수 있고 그러한 침략은 바로 2000년이 넘도록 '동해'라고 불린 바다를 하루 아침에 '일본해'라고 둔갑시킨 것이다. 이처럼 작은 이야기에 불과한 대종천이지만 일본은 동해라는 명칭을 없애고자 저지른 역사침략이었던 것이다.
*동해천(대동여지도)
<2007.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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