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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오봉산 청평사(五峰山淸平寺)

蔥叟 2007. 8. 13. 05:51

춘천 오봉산 청평사(五峰山淸平寺)

 

   천년 고찰 청평사는 고려 광종 4년(973) 영현(永賢) 스님이 창건하여 백암선원이라 하였고, 문종 22년(1068) 춘주도(春州道) 감창사(監倉使) 이의가 중건하여 보현원(普賢院)이라 하였다. 이후 이의의 아들 이자현(李資玄)이 이곳으로 내려와 은거하며 모든 것을 말게 편정된 산이라 하여 산 이름을 청평산이라 바구고, 사찰을 중창해 문수원(文殊院)이라 하였으며, 인근에 여덟 암자를 신축하였다.

 

   충숙왕 14년(1327) 원나라 황제 진종(晉宗)의 왕후가 불경과 함께 돈 1만 꾸러미를 시주하면서 황태자와 왕자들의 복을 빌고 그 내력을 기록한 비를 세웠는데, 현재 그 비는 남아 있지 않고, 비의 내용이 '익재난고'와 '동문선'에 '有元高麗國淸平山文殊寺施藏經碑'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전한다.

 

   공민왕16년(1367)에는 당대의 고승 나옹(癩翁)스님이 공민왕의 청에 따라 2년 동안 머물렀으며, 조선 초기에는 김시습이 이곳에 살며 시를 남겼는데 그중 6편이 '매월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명종 10년(1555), 당시의 판선종사(判禪宗事) 보우(普雨)스님이 칙령에 의해 주지로 부임한 뒤 대대적인 중창을 하고 절 이름을 청평선사(淸編禪寺)로 바꾸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회전문(廻轉門)도 이때 신축된 것이다.

 

   보물 제164호로 지정된 청평사 회전문(廻轉門)은 사찰을 들어설 때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만나는 사천왕문을 대신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중생들에게 윤회전생의 의미를 개우치게 한다. 청평사지(淸平寺誌)에는 남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맞배지붕을 취한 회전문은 중앙의 1칸을 넓게 잡아 통로로 하고, 좌우의 비좁은 혐칸에는 벽을 쳐서 사천왕 등의 입상을 안치할 수 있도록 하였다.

 

   건물의 성격에 맞게 간소하게 꾸며져 있는 이 문의 천장은 대들보와 마루대공만으로 조립되어 있으며, 내부의 중앙 좌우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대들보를 받치게 했다. 또한 윗부분에는 화살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세워 만든 홍살을 설치하였다. 주심포계통의 익공양식으로 연등천장에 홑처마로 되어 있다. 따로 �은 기단 없이 축대 위에 구성된 주춧돌은 지붕 및 몸체의 구성과 어울려 단순하고 절제된 맛을 보여준다. 회전문은 16세기 중엽 건축 양식 변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는 귀중한 건축물로 천년고찰 청평사의 역사와 정신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오봉산 청평사(五峰山淸平寺)

 

*청평사 전경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청평사 회전문(廻轉門)

 

*청평사 누각과 회랑

   

*청평사 누각과 회랑

 

*청평사 누각과 회랑

  

*청평사 대웅전

 

*청평사 대웅전 기단

 

*청평사 대웅전 계단

 

*청평사 대웅전 계단 소맷돌

 

*소맷돌 문양

 

*소맷돌 문양

 

*나한전

 

*나한전

 

*관음전

   

*극락보전

 

*극락보전

 

*극락보전

  

*대웅전 회랑

 

*대웅전 회랑 내부

 

*누각과 회랑

 

*누각과 회랑

 

*누각과 회랑

  

*계단

 

*석축

   

*청평사 전경

 

*청평사 전경

 

*청평사 전경

   

*청평사 요사

 

*청평사 은행나무

 

 

 

<2007.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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