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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청평사 고려정원(高麗庭園)

蔥叟 2007. 8. 14. 05:31

춘천 청평사 고려정원(高麗庭園)

 

   청평사를 품고있는 오봉산(五峰山)은 본래 이름이 경운산(慶雲山)이었으나 비로봉, 보현봉, 문수봉, 관음봉, 나한봉 등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 오봉산이라 불리어지게 되었다. 이외에 경수산, 청평산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산과 호수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호반 산행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아름드리 소나무와 화강암 바위, 그리고 아름다운 계곡이 잘 어우러진 아기자기한 산이다. 

 

*청평사 계곡

 

*청평사 계곡

 

*거북바위

  

   청평사에는 '공주와 상사뱀'이라는 애틋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전하는 사람마다 조금식 차이는 있지만 사랑과 불교정신을 바탕으로 꾸며진 이야기이다. 옛날 중국에서 공주와 사랑을 나누던 평민총각이 있었다. 하지만 왕에게 발각되어 청년은 처형을 당하였다. 공주를 잊지 못한 총각은 결국 상사뱀으로 환생하여 공주의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청평사 폭포

 

*청평사 폭포

 

*청평사 폭포 

   

   온갖 시술에도 뱀이 떨저지지 않자 공주는 점점 야위어갔다. 공주는 여러 사찰을 찾아다니다 결국 이곳 청평사까지 찾아오게 되었다. 공주는 구성폭포 아래 작은 동굴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에 범종소리가 들리자 상사뱀에게 절에 다녀오겠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공주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던 상사뱀이 웬일인지 공주의 말을 듣고는 몸을 풀어주었다.

 

*구성폭포

  

*구성폭포

  

*구성폭포와 공주탕

  

   계곡 웅덩이에서 목욕재계하고 청평사를 찾아 기도를 올리던 공주가 늦어지자 상사뱀이 불안감에 공주를 찾아 회전문을 들어서려던 찰라, 맑은 하늘에서 갑자기 소나기와 함께 벼락이 내리자 뱀이 그자리에서 죽고 불어난 빗물에 떠내려가 버렸다. 기도를 마친 공주가 나와 보니 뱀이 죽어 폭포에 둥둥 떠 있었다. 공주는 시원한 마음과 애처러운 마음이 함께 들어 삼사뱀을 정성껏 묻어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며 부처님 은공에 감사드리는 마음을 담아 삼층석탑을 세웠다. 이후 공주가 머물렀던 동굴은 '공주굴', 목욕을 했던 웅덩이는 '공주탕', 삼층석탑을 '공주탑'이라 불리게 되었다. 

 

*구성폭포와 공주탕

 

*구성폭포와 공주탕

  

*구성폭포와 공주탕

    

   청평사 사역 전체를 아우르는 고려정원은 문수원을 중창한 이자현이 조성한 것으로, 우리나라 정원 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일본 교토 사이호사(西芳寺)의 고산수식(枯山水式) 정원보다 200여년 앞선 것이다. 구성폭포에서 오봉산 정상 부근의 식암(息庵)까지 2km, 9천여평의 방대한 지역에 펼쳐진 고려정원은 계곡을 따라 주변의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수로를 만들고, 계곡의 물을 자연스럽게 정원 안에 끌어들여 영지(影池)에 연결시켰으며, 정자와 암자 등을 그 주변에 세워 자연의 섭리 속에 정진하는 불교정신을 잘 보여준다.

 

*구성폭포

 

*구성폭포와 공주탕

 

 *공주굴

 

   영지(影池)는 오봉산의 옛 이름인 경운산의 부용봉(芙蓉峰)이 물 위에 그림자처럼 떠오른다고 해서 영지라 불리운다. 연못 가운데에는 삼신산(三神山)을 상징하는 세 개의 큰 돌이 놓여져 있으며, 그 사이에 갈대가 심겨져 있어 단순하면서도 입체감 있는 변화감을 더하여 아름답다는 느낌을 준다. 1981년 조사단이 지표발굴과 측량조사를 했는데, 이 연못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는 전형적인 고려시대 연못인 영지라고 밝혔다. 영지 밑바닥에서 고려말 청자편과 조선시대 백자편이 발견되었다. 못의 규모는 남북 19.5m, 북쪽 호수 안이 16m, 남쪽 호수 안이 11.7m로 뒤쪽이 약간 넓은 사다리꼴이다. 이것은 감상자의 시각을 배려한 것으로 추측되며 약간 넓은 사다리꼴이다.

 

*영지

  

*영지

 

*영지의 삼신산

 

   일명 공주탑이라 불려지는 청평사 삼층석탑은 청평사로 가는 옛길인 환희령 고갯마루 바위 위에 세워진 신라시대 양식을 충실히 따른 고려시대 석탑이다. 3층 몸돌외에는 모두 원래의 부재이다. 상층과 하층의 기단에는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이 2:1로 새겨져 있으며, 각층의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이 새겨져 있다. 지붕돌 받침은 모두 4단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3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찰주공이 남아있다. 지붕돌의 추녀선이 위로 올라가 날렵한 감을 주고 있으며, 주위의 소나무와 폭포, 암반 등과 어울려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이 탑은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어 다른 절의 탑과 비교하여 그 위치가 특이하다. 

 

*청평사 삼층석탑(일명 공주탑)

  

*공주탑

 

*공주탑

   

   청평사 부도는 이 절에 들어와 도를 닦았던 고려시대의 뛰어난 학자인 이자현의 것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이자현의 호는 식암(息庵) 또는 희이자(希夷子)였는데, 인품이 뛰어난 그를 흠모한 고려 인종임금은 그가 세상을 떠나자 진락(眞樂)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팔각원당형 부도로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높이는 180cm이다.

 

*부도

 

 

 

  <2007. 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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