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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범어사 하단 영역

蔥叟 2007. 2. 12. 08:22

부산 금정산 범어사 하단 영역

 

   금정산 범어사(金井山 梵魚寺). 범어사를 품고 있는 금정산은 동국여지승람에 그 유래가 잘 실려있다.

 

   "현의 북쪽 20리 지점에 금정산이 있다. 산마루에 바위가 있으니 높이가 3길쯤 되고 위에 우물이 있는데 둘레가 10여척이고 깊이가 7촌쯤 된다. 물이 항상 가득 차 있어 가물어도 마르지 않으며 빛이 황금과 같다. 세상에 전해오기를 한 마리의 금색 물고기가 오색 구름을 타고 하늘로부터 내려와 그 속에서 헤엄쳐 놀고 있었기 때문에 이로써 그 산을 이름지었고, 그로 인연해서 절을 짓고 범어라 이름지었다 한다." 

 

<동국여지승람 동래 금정산조>

 

 *하마비

 

*범어사 일주문

 

   금정산 범어사는 의상대사의 화엄전교십찰(傳敎十刹)의 하나로 창건되었다. 신라 흥덕왕 10년(835) 동쪽 해안에 왜구기 10만 병선을 거느리고 나타나 위협하였다. 그때 왕의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걱정 말라며 이렇게 가르쳐 준다.

 

   태백산 속에 의상 화상이란 분이 있다. 이분은 금산보개(金山寶蓋)여래의 제7후신으로 항상 성중(聖衆), 범중(凡衆), 귀중(鬼衆) 각 1천씩 3천대중을 거느리고 화엄의지(華嚴義持) 법문을 연설하고 있어 화엄신중 40법체와 제신 천왕이 늘 따라다니며 보호한다. 또 동해변에 금정산이란 산이 있고 그 산정에는 바위가 높리 솟아 있는바 그 높이가 50여척이고 그 위에 샘이 있으며 물빛이 항상 금색인데 사시에 마르지 않고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범천으로부터 내려와 그 속에서 헤엄쳐 다닌다. 

 

*일주문 정면

 

*금정산 범어사 편액

 

   대왕이 의상대사를 모시고 함꼐 그 산에 가서 금정암 밑에서 칠일칠야 동안 화엄경을 독송하고 신중정근을 하면 미륵여래가 금색신을 나타내고, 사천왕이 각각 병기를 들고 색신을 나타내며, 비로자나여래가 금색신을 나타내어 보현, 문수보살과 향화동자 및 40법체 신중과 제신청왕을 거느리어 각각 병기를 가지고 일본을 제압할 터이니 왜병은 자연 물러갈 것이다. 만약 후대에 왜병이 일어나도 이곳 바위 아래에서 화엄정근을 하면 자손이 끊어지지 않고 병난이 영원히 그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에 왕이 사자를 보내 의상대사를 모시고 와서 일러준 대로 하니 말과 같이 제불 보살 천왕 신중이 나타나 병기로 위협하고 바다를 뒤집어 놓으며 바람과 불로 공격하여 일거에 왜선을 격퇴하였다. 

 

*조계문 편액

 

*선찰대본산 편액

  

   이에 왕이 대단히 기뻐서 의상대사를 예공대사(銳公大師)로 봉하고 금정암 아래에 2층 미륵전을 짓고 미륵석상과 좌우보처 및 사방 천왕이 병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조성 봉안하고, 미륵전 서쪽에는 비로전을 지어 비로자나불상과 문수 보현보살 및 향화동자상을 조성 봉안하느데 모든 병기를 들게 하는 등으로 범어사를 창건하여 부처님 은덕에 보답하였다.

 

<범어사 창건사적>

 

   그러나 702년에 입적한 의상대사가 130여년이나 뒤인 835년에 나타나 범어사를 지었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다만 의상대사가 범어사와 연관을 가진 것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문무왕시절에 사천왕사를 창건연기설화를 읽는 듯하다.

 

*일주문 옆면

  

*천왕문

 

   범어사로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만나는 건물이 바로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만법이 구족하여 일체가 통한다는 법리가 담겨있어 일명 삼해탈문이라고도 한다. 조계문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문은 초창연대는 알 수 없으나 조선 광해군 6년(1614) 묘전화상이 사찰 내 여러 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건립하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숙종 44년(1718) 명흡대사가 석주로 바구고 정조 5년(1781) 백암선사가 현재의 건물로 중수하였다. 삼문으로 처리하고 높은 주초석 위에 짧은 기둥을 세운 점 등은 특이한 수법이다. 공간포가 1구씩 배치된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이다.

 

*일주문에서 본 천왕문

 

*천왕문

 

   일주문에서 일직선상으로 천왕문과 불이문이 놓여있다. 마치 부석사의 진입공간과 비슷한 수법이다. 청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집이며, 정면 어칸은 통로로 사용하고 있다. 내부에는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천왕문은 숙종 26년(1700)에 당시 승통 자수(自修) 장로가 세운 것으로 편액 역시 당시에 쓰여진 것이다.

 

   천왕문을 지나서 계속 가면 불이문이 있고 이를 지나면 가파른 계단 위로 보제루가 서 있다. 여기가지가 범어사의 하단 영역이다. 불이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으로 세칸이 모두 문이 달려있다. 기둥 위 공포와 공포 사이의 화반이 눈길을 끈다.

 

*천왕문 편액

 

*불이문

 

   일주문 - 천왕문 -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범어사의 진입로는 뛰어난 구성을 하고 있다. 3칸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일주문도 특이하지만 일주문 지나 계단 위의 천왕문, 천왕문 지나 낮은 담장을 끼고 멀리 바라보이는 불이문까지 한국불교건축에서 가장 뛰어난 장면 가운데 하나라고 김봉렬 교수는 극찬한다.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에는 아무 것도 없이 오로지 길뿐이다. 이 길을 위해 나즈막한 담장을 쌓았고, 길 옆으로 쭉 뻗은 나무들을 심었다. 그리고 바닥을 세 개의 얕은 단으로 나누어 상승감을 강조한다. 그 뒤에 불이문이 있지만, 뻥 뚫린 문 뒤로는 끝도 모를 계단만 계속될 뿐이다.

 

*천왕문에서 본 불이문

 

*불이문

 

   사람 키보다도 낮은 이 공간을 보호하려는 목적보다는 적막한 길의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건축적 장치다. 그리고 길의 뻗어오름을 강조하기 위해 양 옆에 줄지어 나무를 심었다. 높은 가로수 줄은 길의 수평적 확장을 도와주며, 효과적으로 불이문에 도달하게 하는 시각적 장치이기도 하다. 그리고 나지막히 상승하는 바닥의 단들은 수펼적 길이 수직적으로 변환하기 위한 예비 단게임을 암시한다. 그리고는 가파른 계단으로 이어진다. 이 곳에는 수평감과 수직감이 교차하는 공간적 율동이 있고, 키 큰 나무의 그늘 사이로 밝게 빛나는 음영의 어우러짐이 잇다. 그리고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북적대도 이곳에서만은 차분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신비한 적막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 길은 그다지 길지도 않고 똑바르지도 않음을 발견할 수 잇다. 3단에 놓여진 세 토막의 길들은 약간씩 어긋나며 휘어져 있다. 그러나 그 분절의 효과 때문에 전체적으로 곧아 보인다. 또한 양켠의 낮은 담장은 길의 시각적 길이를 효과적으로 확장한다. 짧지만 길고, 굽었으되 곧아 보인다. 한국적 미학의 극치다.

 

<김봉열의 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불이문 편액

 

 

 

<2007. 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