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중원서원문화권

충주 미륵리 절터

蔥叟 2006. 7. 19. 08:19

충주 미륵리 절터

 

   이곳 미륵리의 미륵사지로 추정되는 곳에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석탑과 석불입상이 남아 전한다. 석불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석굴의 방형 주실은  가로 10.75m 세로 9.8m의 넓이 이며, 높이 6m의 큰 무사석으로 짜올렸고, 그 가운데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도록 만들었다.

 

   이곳에서 미륵당초라고 새긴 명문평와가 출토되었으며, 건립연대는 대략 통일신라 말기 부터 고려초기로 추정되고 있다. 지형적 원인이라고 생각되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북향사원지이다. 부근에는 남북교통의 요충입 계립령, 조령이 있어 이와 관련된 유적인 듯하다.

 

*미륵리 절터

 

*미륵리 귀부

 

*미륵리 귀부

 

  절터 입구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큰 것으로 꼽힐 만한 돌거북이 있다. 본디 그자리에 있던 거대한 바위를 대충 다듬어서 만 든 것으로 보이는데 세모진 머리에 동그란 눈, 넙죽 다문 입, 조그맣게 뚫린 콧구멍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등 부분에는 비좌부분이 남아잇으나 비신은 없어졌다. 거북의 왼쪽 어깨에는 자그마한 거북이 두 마리가 어미의 등을 기어오르는 모습을 새겨 놓았다.

 

*미륵리 귀부의 새끼거북이

 

*미륵리 절터의 석재들

 

*미륵리 절터 당간지주

 

   돌거북 맞은 편에는 허리가 부러진채 쓰러져 있는 당간지주가 있는데 단간지주에서는 보기드문 연꽃이 소담하게 새겨져 있다. 연화문 당간지주는 경주의 보문사터에도 한기가 남아서 전하고 있다.

 

*미륵리 절터 당간지주의 연화문

 

*미륵리 절터 당간지주의 간공

 

*사각석등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방등형 석등으로 하대석과 간주석, 상대석, 네 귀퉁이에 둥근 기둥을 세워 구성한 화사석,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하대석에는 복련이, 간주석의 한면에는 불꽃문양이 상대석에는 앙련이 새겨져 있다.

 

*사각석등의 불꽃문양

 

*미륵리 석등

 

   이 석등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8각석등이다. 지대석과 하대석은 한 돌로 조성되었는데, 하대석에는 여덟잎의 복련이 새겨졌으며 8각의 간주석은 알맞은 높이로 조화를 이루었다. 간주석 위의 상대석에는 여덟 잎의 앙련이 새겨져 있다. 8각 화사석의 네면에 화창이 있다. 옥개석의 추녀선은 약간 반전하였으며, 꼭대기에 보주가 조각되었다.

 

*오층석탑

 

   기단부와 탑신부를 갖춘 5층석탑이다. 기단의 중석에는 우주와 탱주가 없고 갑석은 형식적인 수법을 가미한 매우 좁은 두장의 판석으로 덮혀있다. 탑신부는 1층 지붕돌이 두장일뿐 2층이상은 한 장씩으로 되어있고, 각 층의 몸돌 역시 형식적인 우주 모양을 새겼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고찰주가 비스듬히 기울어진채 꽂혀있다. 노반은 비나치에 커서 6층몸돌로 오해받기 쉬우며 복발은 장식이 없는 반구형이다. 탑의 조성연대는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전설에 의하면 미륵불과 함께 마의태자와 관계있다고 하나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미륵리 석불입상

 

   이 불상은 고려시대 초기에 많이 조성된 일련의 거불들과 양식적 특징을 같이하는 석불입상이다. 모두 5장의 돌을 이용하여 불상을 조성하고 1장의 얇은 돌로 갓을 얹었다. 둥근 얼굴에 활 모양의 눈썹, 긴 행인형의 눈, 넓적한 코, 두터운 입술 등은 고려 초기 거불의 지방화된 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다.

 

   신체는 소략한 옷주름의 표현이라든가 앞으로 모아서 구슬같은 것을 잡고 있는 두 손의 치졸한 묘사 등 얼굴과는 대조작으로 간략화하고 괴체화한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석불입상 하반신

 

*석불입상 상반신

 

*석불입상 상호

 

*미륵리 석굴

 

*미륵리 석굴

 

*석굴의 불좌상 조각

 

*미륵리 보주탑

 

*미륵대원터

 

   '중원 미륵리 사지'의 창건 후에 지리적 여건과 역원제도의 정비로 동쪽에 별도로 역의 기능을 담당하는 원을 세우고 '미륵대원'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절을 일컫는 말 가운데 '사원(寺院)'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절과 원을 합친 말이다.

 

   '삼국유사'에 '미륵대원계립령동령야(彌勒大院鷄立嶺東嶺也)'란 한 기록과 일치하고 있다. 이 원터는 계립령 길과 연관되어 고려초기에 설치되어 운영되다가 조선시대에 조령(새재)에 관방시설이 완비되면서 이곳 원터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갔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에 대한 발굴결과 2차에 걸친 중수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며 건물지는 '回'자형의 구조로 가운데에는 말을 묶어 둔 마방시설을 두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주변의 건물터는 나그네 숙소 및 관리인이 기거했던 건물터의 구조로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곳은 사찰과 원터의 기능이 같이 이우러진 고려초기 중요한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하늘재입구 미륵리 삼층석탑

 

   신라탑의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일반형 석탑으로 장중한 2중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형성하고 그 위에 노반을 얹어놓았다. 매우 안정감이 있으며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을 하고 있다.

 

   미륵대원터의 동쪽 200m지점에 세워져있는데 탑을 세운 전확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비보사탑성에 의해 땅기운이 약한 곳을 보강하기 위해 세운 것이라는 설도 있다. 풍수보는 이들의 말에 의하면 미륵리 절터를 중심으로 볼 때 지릅재가 장풍의 역할을 제대로 맡고 있지만 하늘재 쪽이 너무 낮아 허하기 때문에 비보책으로 탑을 세웠다는 것이다. 

 

*미륵리 삼층석탑

 

*하늘재 불두

 

   높이 138cm, 최대너비 118cm의 대형 화강암 부루두로 이목구비가 뚜렷이 남아있다. 땅 속에 묻혀있던 것을 찾아 세워놓았다. 눈매는 一자형으로 보이며 입도 日자형으로 다소 작게 표현되었고 입술 윤곽선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코와 입 사이에는 사실적으로 음각 주름선을 새겼고 귀는 길며 코는 오똑하지 않고 다소 편평하게 처리하였다. 미완성의 석불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지방의 불상양식을 살필 수 있는 문화재이다.

 

*하늘재 불두

 

 

 

<2006.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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