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순례◈/서라벌문화권

경주 전진평왕릉

蔥叟 2006. 6. 1. 08:25

경주 전진평왕릉

 

   보문들판의 동쪽 끝자락에 명활산이 자리잡고 그 앞에 일단의 숲이 오롯이 바라다보인다. 그 숲속에 자리한 능이 진평왕릉으로 전해지는 고분이다. 진평왕은 신라 제26대 임금으로 재위기간이 무려 54년이나 되어 혁거세왕 다음으로 오랫동안 왕위에 있었다. 진평왕(眞平王)이라는 왕호는 죽은 뒤에 붙여진 시호이고 생전의 이름은 백정왕(白淨王)이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 슈도다나(Suddhodana)를 불전(佛典)에서는 흔히 정반왕(淨飯王) 또는 백정왕으로 불렀다. 왕비는 마야부인 김씨였다. 석가세존의 어머니 이름과 같다. 진평왕의 아버지는 진흥왕의 맏아들인 동륜(銅輪), 맏딸인 선덕여왕의 이름은 덕만(德曼)으로 모두 불교식 이름이다. 불교에 대한 믿음이 매우 깊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일가족 모두가 석가모니의 일가(一家)였다는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신라 불국토사상의 일면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황룡사의 장륙존상, 구층목탑과 함께 신라삼보(新羅三寶)로 일컬어지던 하늘이 내려주었다는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얻은 것도 진평왕이 즉위하던 해였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진평왕이 내제석궁(內帝釋宮)에 거동하였을 때에 돌사다리를 밟으니 돌 세 개가 한목에 부러졌다. 왕이 측근자들에게 말하기를, “이 돌을 옮기지 말고 후대들에게 보여주라”고 하였으니, 즉 이 돌은 성중에 있는 움직이지 못하는 돌 다섯 개 중의 하나이다. 그가 즉위한 첫해에 천사가 대궐 마당에 내려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하느님이 나를 시켜 옥대를 전해주노라” 하니 왕이 친히 무릎을 꿇고 받았다. 이후에 천사는 하늘로 올라갔으니 무릇 교외에 나가 지내는 제사 때나 종묘에 지내는 제사 때나 모두 왕이 이 옥대를 사용하였다. 그후 고구려왕이 신라를 치려고 계획하면서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기 때문에 침범해서는 안 된다고 하니 무엇을 두고 하는 말일까?” 하였더니, 첫째는 황룡사 장륙존(丈六尊) 불상이요, 둘째는 그 절의 구층탑이요, 셋째는 진평왕의 “하늘이 준 옥대”라고 하여 왕은 곧 계획을 중지하였다고 한다.

 

<삼국유사 천사옥대(天賜玉帶)조>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숫자「3」을 매우 좋아했다. 삼세판이라는 말이 있으며, 신라 왕실이 박, 석, 김의 3성이 있었고, 삼기(三奇)가 있었고 삼보(三寶)도 있었다. 사람의 이름에도 「삼룡」이란 이름이 많았다. 3월3일을 삼짓날이라 했으며 3의 곱인 9월 9일을 중구절이라 하였다.


   그러면 이곳이 왜 진평왕릉으로 지정되었을까? 이 능은 1730년(영조 6년)까지만 해도 왕릉으로 인정되지 않던 무덤이었다. 그런데 경주 김씨가 11기, 경주 박씨가 6기의 왕릉을 새로이 지정할 대 진평왕릉으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의 관련 자료인 신증동국여지승람 경주부 산천조에 의하면 분황사에서 보문단지를 잇는 곳에 오리숲을 조성하였는데 그것은 보문단지 쪽에서 경주시내로 흐르는 물이 자주 수해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를 방지하고자 조성한 방수림이 바로 오리숲이었다고 한다. 지금도 보문단지 입구에는 숲머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런데 전진평왕릉이 있는 남촌 일대는 방수림으로 인하여 물길이 막혀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에 밤이면 몰래 물꼬를 터서 물을 대었기 때문에 경주 부윤이 제방을 트는 행위에 대한 벌칙을 강화해 달라고 조정에 요청하였다. 그래서 이곳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노는 땅이라는 의미의 한지(閑地)라고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1730년에 경주 김씨들이 11기의 왕릉을 지정하면서 삼국사기에 진평왕릉을 한지에 장사지냈다(葬于漢只)는 기록에 의거 한지(漢只)와 한지(閑地)의 발음이 같은 것에만 착안하여 이 고분을 진평왕릉으로 지정해버렸다. 따라서 진평왕릉은 한기부(韓岐部) 또는 한지부(漢只部)에서 찾아야 하는데 한지부는 경주의 북부지역으로 추정된다. 전진평왕릉에는 무열왕릉에서 시작된 자연석으로 된 호석이 둘러져 있어 무열왕릉을 전후한 시기의 왕릉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진평왕릉은 아니며 삼국사기에 「낭산동쪽에 장사지냈다」(葬狼山東)는 신문왕릉으로 볼 수는 없을까? 고분의 양식상으로나 위치상으로 볼 때 상당히 근거있는 이야기이다.

 

*전진평왕릉 초입의 숲

 

*전진평왕릉 초입의 숲

 

*전진평왕릉 초입의 숲

 

*전진평왕릉

 

*전진평왕릉

 

*전진평왕릉

 

*전진평왕릉 초입의 숲

 

*전진평왕릉

 

*소나무가 왕릉 쪽으로 읍하고 서있다

 

*왕릉의 능선

 

*왕릉의 능선

 

*혼유석

 

*왕릉 주변에 흐드러진 꿀풀

 

*호석과 들꽃

 

*들꽃

 

 

<2006.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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