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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 '안이토리' 각석

蔥叟 2018. 10. 27. 21:10

서울 한양도성 '안이토리' 각석

 

 

 

 

한양 도성의 각자 가운데 목멱산 동쪽 기슭, 국립극장에서 목멱산으로 올라가는 차도에서 오른편으로 도성을 따라 오르는 순심로로 접어들어 조금 올라가면 나타나는 첫 번재 성돌에 안이토리라는 이름이 나온다. “禁都廳監官李秀枝吳首俊 石手邊首安二土里 庚寅三月日” 글자가 많다 보니 각각 가로세로 45×41cm, 56×34cm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돌 두 개에 나누어 새겼다. 금위영 도청 감관인 이수지, 오수준 두 사람이 이 구간의 공사 감독을 맡았다. 기술 책임자인 석수 편수가 안이토리이다. 경인년은 1710년(숙종36)이다. 1709년 가을에 들어서 1704년부터 1705년가지 수축한 도성 가운데 문제가 생긴 곳을 개축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그해 겨울을 넘겨 1710년 봄에 날씨가 풀리자 본격적으로 공사를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때 이 구간도 공사를 하였고, 이 각자를 새긴 것이다.

 

다른 하나는 거기서 다시 100m 쯤 더 올라가면 나온다. 각자 내용은 “都廳監官趙廷元吳澤尹商厚 邊手安二土里 己丑八月日”이다. 여기도 금위영 구간인데, 금위영이라는 표기는 빠졌다. 도청 감관이 조정원, 오택, 윤상후 세 사람이다. 편수가 안이토리다. 편수 앞에 들어갈 석수라는 글자도 다 안다 하여 생략한 듯하다. 기축년은 1709년이다. 앞서 본 각자를 새긴 해보다 한 해 빠르다. 이 각자가 잇는 오늘날 목멱산 동봉이라고 하는 봉우리를 당시에는 구억봉이라 하였는데, 그해 4월 이곳의 성벽 5간이 무너져서 7월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언데 공사를 완료하였는지 다른 자료에서는 찾기 어려운데 이 각자가 8월에 완료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각자가 새겨진 성돌은 가로세로 125×57cm로 큰 편이며 네모반듯하게 다듬지 않았다. 성돌 모양이나 크기로 볼 때 세종 대 성돌로 보인다.

 

안이토리, 이름이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을 정도로 특이하다. 쉽고 어감이 좋다. 한자도 아주 쉽다. 양반 관료들은 이런 이름을 갖지 않는다. 순수한 우리말 이름일 터인데 둘째 아들이라 ‘이돌’이라 한 것을 ‘이토리’라고 적은 것은 아닐까? 석수이니 그의 신분은 평민이었을 것이다. 석수라서 도성 쌓는 데 여기저기 일을 많이 하였고, 석수로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도편수까지는 아니지만 편수가 되어서 도성 각자에 세 번이나 등장하였다. 좀 특이하기는 하지만 그럿 도 잇는 일. 여기가지라면 마음이 짠할 것 까지는 없다. 그런데 뜻밖에도 안이토리라는 이름이 도성의 각자가 아닌, 공식 기록물인 <승정원일기> 1711년(숙종37) 4월8일자에 등장한다.

 

금위영에서 계를 올려 말하였다. “지금 수구문을 개축할 때 홍예석을 자리 잡아놓으면서 저희 영의 석수인 안이토리가 돌에 깔려 중상을 입었습니다. 여러모로 치료를 하였지만 끝내 운명하였습니다. 일이 지극히 놀랍고 참담합니다. 저희 영에서 약간의 쌀과 포목을 지급하여서 염을 해서 장사 지내도록 하겠다는 뜻으로 계를 올리나이다.” 임금이 알겠다고 답을 하고, 담당 호조로 하여금 휼전을 베풀도록 명하였다.

 

석수로서 여기저기서 도성 쌓는 일을 하였던 안이토리 씨가 광희문을 짓는 공사를 하다가 돌에 깔려 돌아갔다. 이때 안이토리의 나이가 얼마인지, 가족관계가 어떠한지, 그의 인생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자료는 찾기 어렵다. 그저 도성 쌓는 일에 인생을 바치다시피 하다가 종국에는 목숨을 바친 일꾼 안이토리로 기억하면 되리라.

 

그런데 안이토리는 그나마 각자로 남고 <승정원일기>에도 이름 넉자가 올라갔으니 이렇게 기억이라도 하지, 이 도성을 쌓고 고치고 하는 데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다과 피를 바치고 사라져간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도성은 누가 쌓았는가?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서 쌓았다. 임금도 한몫을 하였고, 관료들도 장수들도 많은 일을 하였다. 하지만 가장 큰 몫은 돌을 떠서 나르고, 쪼아서 모양을 만들고, 땅을 파고 다지며 도성을 쌓아올린 백성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도성은 수많은 안이토리들의 것이다.

 

 

▲한양도성 '안이토리' 각석

 

 

 

▲한양도성 '안이토리' 각석

 

 

 

<2018.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