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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유신장상벽전 - 경주 사천왕사터 활과 화살을 든 신장

蔥叟 2018. 10. 2. 13:53

녹유신장상벽전 - 경주 사천왕사터 활과 화살을 든 신장

 

ㅎ활과 화살을 든 신장은 정면을 응시하고, 왼손에 활, 오른손에 화살을 들고 있다. 사천왕사(四天王寺) 동ㆍ서 목탑터 기단부에서 출토된 녹유전에 새긴 상(像)의 정체에 대하여 강우방의 사천왕상설(四天王像說)과 문명대의 팔부신중설(八部神衆說)이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그런데 발굴조사 결과 녹유전은 동서 목탑터 모두에서 같은 양상으로 출토됐다. 즉, 녹유전은 기단부 네 면에 목탑 기단부를 장식하던 면석(面石)으로 사용됐으며, 아울러 그것들은 기단 계단을 중심으로 각 면에 6개씩(3쌍×2조), 모두 24개(4면×6개)를 배치되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아울러 일제시대에 출토된 파편과 최근에 확보한 조각들을 토대로 복원한 결과 이 녹유전들이 구현하고자 한 상은 3종류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녹유전은 사천왕상이 될 수는 없다. 사천왕상은 네 가지로 나타나야 하지만, 세 가지에 지나지 않으며, 더구나 탑 하나를 장식한 총 숫자가 무려 24개나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팔부신중이라는 주장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더욱 탄력을 받게 된 것도 아니다.

 

   여기에 새로운 견해가 덧붙여졌다. 이 녹유전 상은 사천왕도 아니며, 그렇다고 팔부신중도 아닌 신왕(神王)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이 사천왕이라면 북방을 관장하는 사천왕은 반드시 손에 탑을 들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례가 발견되지 않으며, 나아가 활이나 화살을 든 모습을 사천왕상으로 보는 근거로 들기도 하지만, 이런 사천왕상이 등장하는 것은 9세기 이후이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또 팔부신중이라고 할 때 무엇보다 그 점수가 8개가 아니라 24점에 달한다는 문제가 있다. 각종 불교경전을 보아도 팔부신중은 8명이라 했지, 그 외 숫자를 거론한 사례는 없다. 따라서 사천왕사 창건시대와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한국과 중국, 그리고 불교미술품들을 비교 사례하면 이 녹유전 상은 불법 전반을 수호하는 '신왕'으로 보아야 하며, 이는 불설관정경과 같은 불교 경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활과 화살을 든 신장

 

▲활과 화살을 든 신장

 

▲활과 화살을 든 신장

 

▲활과 화살을 든 신장

 

▲활과 화살을 든 신장

 

▲활과 화살을 든 신장

 

 

 

<2018. 3. 18>